사제직을 신앙 공동체의 부산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가톨릭 조직을 만들다 보니 필요성에 의해 사제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톨릭 신앙인 중에서도 사제직을 공동체의 필요성에 의해 나타난 직무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교회는 사제직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되었으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직분이라고 가르친다. 사제직을 단순히 사회 조직의 일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는 신약성경의 기본 골격이기도 하다. ‘구원’의 개념을 지극히 단순화하자면, ‘하느님과 우리가 서로 일치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위격에 참여하는 것’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하느님과 인간의 이러한 일치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그리스도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와 친교를 이루는 완벽한 중재자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성경은 그리스도를 예언자요, 대사제이며, 목자, 왕, 주님으로 부르고 있다. 길이기에 목자요 왕이며, 진리이기에 예언자요 스승이고, 생명이기에 사제다(요한 14,6 참조). 예수는 특히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셨기에 스스로 제물인 동시에 제사를 드리는 사제다. 사제 그리스도는 이렇게 인간과 하느님을 통하게 한다.
이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특히 대사제,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히브 7,25-26).
대사제 그리스도는 특히 계약의 중재자다(히브 9,15 참조). 여기서 바로 이 ‘중재’가 사제직이 의도하는 궁극적 목표다.
그런데 이러한 중재하기 위해선 인성이 필요하다.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히브 5,1).
사제는 인간을 위해 일하고 인간과의 유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사제는 인간 본성을 지녀야 한다. 단순히 인간 본성만 지녀서는 안 된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마음 가득 넘쳐흘러야 한다.
또 인간 연민에만 머물러선 진정한 사제가 될 수 없다. 늘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인간이긴 인간이되, 철저하게 ‘하느님을 향한 인간’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듯이 그래야 진정한 사제가 될 수 있다.
예수도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져야 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어야 했다”(히브 2,17). 결국 인간 나약성에 대한 연민은 사제직의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래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사제직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히브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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