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시, 세 공소를 돌아본 김성현 신부가 비로소 몽골 항올본당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랫배가 욱신거린다. 얼마 전 탈장 수술을 한 부분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의사는 김 신부에게 절대안정을 취할 것을 권했다.
“신부님, 이번이 세 번째 수술입니다. 다음에 또 재발하면 칼을 댈 데가 없어요.”
김 신부는 2007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탈장 수술을 받았다. 선교생활 10년 동안 몸을 너무 혹사시킨 결과였다. 성전을 건립할 때도, 장마로 지하에 물이 넘쳐날 때도 김 신부는 발 벗고 나서 삽과 양동이를 들었다. 뿐만 아니다. 김 신부는 엉덩이를 붙이고 사무실에 앉아있는 법이 없었다. 남한 크기의 4배에 해당하는 넓이를 관할해야 하는 김 신부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다. 식복사도 없이 매 끼니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생활, 김 신부는 자신의 몸을 챙기기보단 신자들을 돌봤다.
‘똑, 똑, 신부님!’ 누군가 김 신부의 방문을 두드렸다. 산자였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김 신부가 걱정됐는지 쭈뼛거리며 ‘얼른 주무시라’고 말한다. 산자는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함께 살아온 예비신학생이다. 내년이면 사제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난다. 부모가 없는 산자에게 김 신부는 아버지나 다름없다. ‘녀석….’
김 신부는 자신을 걱정하는 산자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년이면 산자의 빈자리가 클 것이다. 그러나 보내야 한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그리고…. 김 신부는 종이를 꺼내들었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수신인은 김 신부의 아버지 신부 대전교구 변갑철 신부였다.
신부님! 오늘은 창밖을 보다 마음이 칼에 벤 듯 쓰라림을 느꼈습니다. 언젠가부터 성당에 나타난 두 남매가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아이들의 아빠는 없고, 엄마는 정신이상자였습니다. 성당으로 불러 목욕도 시켜주고, 미사도 드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를 들어갈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아직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양의 뇌를 덥석덥석 먹습니다.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양의 뇌를 말입니다.
몽골 선교 10년째, 이제 단련될 때도 되었건만,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먹먹합니다. 밥을 굶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혼전 동거와 높은 이혼율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조금만 지원해준다면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똑똑한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기차에서 떨어진 석탄을 주우려다 죽기도 합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곳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들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선적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세파에 시달릴 때에 의지처와 피난처가 돼 주는 하느님의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한국 신자분들의 도움을 통해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후원금으로 항올성당과 세 공소의 땅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성전을 짓고,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교육센터, 장애인을 위한 센터도 지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리 항올본당 공동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후원해주신 여러분의 덕분인데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하느님, 당신의 은총을 허락하소서.
신부님! 지금은 종모트 지역의 성전 건립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종교활동 허가도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재정적인 면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니까요.
신부님,
지금 몽골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이 살아있음의 기쁨을 만끽하며 여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탁 트인 하늘 아래, 푸르른 초원 위에 거닐고 있는 양떼를 바라보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몽골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이곳에서 오래오래 이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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