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기 청년 도보성지순례’가 7월 10일부터 18일까지 8박9일간 대전교구와 수원교구 성지 일원 250km 구간에서 열렸다. 순례에는 용인대리구 청소년국장 박현준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 5명과 수도자 1명, 고등학생 8명을 포함한 79명의 청년 참가자, 봉사자 23명 등 총 102명이 참가했다. 대장정을 마치고 7월 18일 교구청에 도착한 참가자들의 모습과 9일간의 순례 여정, 참가자 소감문 등을 사진과 함께 싣는다.
“주님을 향하여! 젊은이답게! 함께 달리자! 청년 신앙 파이팅! 청년도보 파이팅!”
7월 18일 정오. 교구청 마당이 떠들썩하다. 때마침 내린 폭우로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이깟 비 정도야’라는 청년들. 비와 한몸이 돼 여기저기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동료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청년들도 보인다. 흙투성이 신발에 무릎에는 붕대를 감은 젊은이들. 발바닥 물집 탓에 절룩거리면서도 얼굴에는 웃음 가득하다.
“해냈다.”
교구의 미래를 짊어질 102명의 젊은이들이 9일간의 도보순례를 마쳤다. 250km. 승용차로 에어컨 틀고 신나게 달려도 한나절은 족히 걸릴 거리. 하지만 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묵주하나만 손에 쥐었다. 발걸음 닿는 곳곳에는 예전에는 그냥 스쳤을 순교자들의 자취가 스며있었다.
‘벼락 빼고는 다 맞아봤다’는 반 농담을 이제 웃으며 할 수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마전선 탓에 순례 기간 내내 비바람과 싸워야 했다. 서해 바닷바람에 몸이 날아갈 정도였다. 그나마 잠깐 햇볕이 내리쬘 때는 무더위와 씨름했다. ‘날천사’(날개 잃은 천사) 몇몇이 대열과 멀찍이 떨어져 따라 붙었지만 낙오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사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 시작한 무모한(?) 여정이었다. 성지를 걸으며 순교자들의 자취를 되짚어보겠다는 도보순례의 참 의미를 되새기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셋째 날부터 이틀간 모두가 침묵하며 걸었다.
‘나는 왜 이 길을 이 사람들과 걷는가. 내가 지금 걸으며 보고 있는 이것들은 무엇일까.’
참가자들은 기도하고 묵상하고 걷고 또 기도했다. 휴대폰 문자 보내기에 능숙했던 엄지손가락은 묵주기도로 바빠졌다. 대전과 수원교구 성지 곳곳에 머물러 미사를 봉헌하며 순교자들을 만났다. 내가 한 걸음 더 빨리 내딛으면 내 뒷사람은 두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그래서 나를 더 낮춰야 한다는 배려도 배웠다. 오랜 행군으로 걷기 힘든 아픈 이들에게는 기꺼이 목발이 돼 줬다. 기도 속에서 서로 밀고 끌어줬다.
‘주교님이랑 미사 해야 하는데 또 비를 맞아서 냄새 나겠다’는 한 참가자의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杞憂). 참가자들과 폐막미사를 봉헌한 이용훈 주교는 “(그 먼 길을 걸어왔을 여러분을) 생각만 해도 감동이다. 사랑과 우정, 우애를 함께 나눈 이번 일정이 여러분들 앞으로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뽀송했던 피부는 오간 데 없고, 발바닥은 상처투성이로 변했지만 무모한 여정의 결실은 너무나 값졌다. 우리 교회의 미래가 일군 열매여서 더욱 그렇다.
참가자들은 이날 폐막미사 중 순례 여정 모두와 이 기간 동안 바친 기도를 봉헌했다.
‘갈매못성지-광천성당-홍주읍성성지-해미성지-신리성지-합덕성당-솔뫼성지-신평성당-공세리성당-궁리성당-요당리성지-발안성당-남양성모성지-상촌성당-수원성지-수원교구청을 걷는 총 250km, 32만4747보, 묵주기도 2만1907단’
■ 도보순례 참가기-김누리(리나·구산본당)
-함께 기도하며 힘든 여정 극복
순례에 참가한 것은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제게 있는 병을 이겨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굳은 의지와 꼭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가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지병으로 반대가 심했습니다. 더 나빠지기 전에 이번엔 꼭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 신부님과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첫날부터 주위 분들이 왜 그렇게 반대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제 힘든 발걸음 때문에 봉사자들과 조원들이 신경 쓰는 모습을 보니 그분들에게 짐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생각했던 믿음보다 제 자신이 따라주지 않음에 속상해 울기도 했습니다. 조장으로서 조원들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자꾸 빈자리만 남겨 속상했었지요. 몸 때문에 날천사(날개 잃은 천사, 대열 후미)로 가 있을 때마다 정말 날개가 생겨서 조원들과 함께 했으면 하며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전 그래도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 중에 속하나 봅니다. 가면 갈수록 힘이 생기고 상태가 좋아져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는 저를 보니 대견스러웠습니다.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니 긴장하고 걱정했었지만 별 탈 없이 이렇게 올 수 있어 너무나 기쁩니다.
우리 모두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건 많은 분들의 기도가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했기에 가능했겠지요. 순례를 통해 소중한 인연이 된 우리 조원들과 봉사자, 신부님들. 많이 부족한 제게 힘을 주고 끝까지 믿고 기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집에 가면 후유증이 클 것 같아요. 알람 없이도 5시 50분이 되면 알아서 눈이 떠질 것 같고, 일어나서 눅눅한 옷 아니면 안 입게 될 것 같고, 티셔츠 입으면 바로 목에 스카프 두르고 있을 것 같고, 비오는 날 우산보다 우비를 입을 것 같고, 밤 11시면 침대가 아닌 침낭에서 자는, 진정한 도보인이 되어 있을 것 같네요.
전 그동안 기도에 대한 의심이 약간 있었습니다. 그런데 9일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가 바친 기도가 우리에게 다시 전달되어 큰 힘이 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었기에 이제는 무엇을 해도 다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고생 많으셨고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저 해냈어요.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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