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한 박스공장. 공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공장이 너무 넓어 에어컨 바람으로도 열기를 식히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게다가 높이 쌓여있는 가지각색의 박스들은 한여름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한다.
그속에서 박스와 함께 땀을 흘리며 보람을 찾는 땀땀땀의 세 번째 주인공 박미경(아녜스·53·수원 남양본당)씨를 발견했다.
에어컨이 없는 공장에서 큰 선풍기 하나만을 의지해 더위를 식히고 있는 박씨가 하는 작업은 화장품을 담는 작은 박스들을 손으로 붙이는 일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기계로 하면 되지 왜 사람이 직접 손으로 박스를 붙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자동접착기계가 따로 있어요. 근데 대부분 큰 박스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은 박스 작업을 하려면 크기를 맞춰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손으로 붙이고 깔끔하게 박스 모양도 다듬어요.”
박스들이 접착기계를 통과해 박씨 앞으로 전달돼 오면 깡마른 손으로 꾹꾹 눌러 붙인다. 반복되는 작업들이 지겨울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서 한가할 틈이 없다고 한다.
기자가 찾아간 날이 비가 내린 날이었음에도 날씨가 후텁지근했다. 얇은 합판천장 바로 아래 작업실이 있어 외부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찌는 듯한 더위를 참아내며 일을 해야 한다.
이곳에서 일한 지도 벌써 5년째. 입사했을 때 길었던 머리도 지금은 짧은 커트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큰 선풍기와 웃음을 벗 삼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더위를 식히는 그만의 무기다.
“처음에는 머리가 길어서 더울 때면 양 갈래로 묶어 삐삐 머리를 하고 다니기도 했죠.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이 막 웃더라고요. 직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즐거워서 더위를 잊어버려요.”
그가 공장에서 여름을 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율무차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공장일 뿐 아니라 농사까지 짓는 그는 여름이면 산에서 캔 율무초를 가지고 오곤 한다.
“율무초가 더위 예방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이걸 식당 아주머니에게 드리면 삶아서 시원한 차로 만들어 주세요. 그럼 저희 직원들이 다 같이 율무차를 마시면서 더위 예방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 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일석삼조라고 볼 수 있죠.”
오후 4시, 이미 주변에는 그가 작업한 박스들이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각 제품 담당자들이 신경 쓸 일이 없도록 패킹(packing)까지 끝내놓았다는 그의 말에서 어머니의 배려심과 여성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전부 수동이다 보니 박스 숫자도 세어야 하고 또 박스 종류도 150여 가지가 넘어요. 그것까지 체크를 하려면 한눈팔 새가 없어요. 또 담당직원이 바로바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죠. 회사에서 저에게 믿고 맡긴 일인데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는 혼자서 하루 평균 500개에서 1300개의 박스작업을 한다. 60여 명의 직원 중에 여자 직원은 단 세 명이다. 사무원과 청소부를 빼면 현장에서 여자는 그뿐이다. 게다가 공장이 넓어서 직원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때문에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거의 대부분 혼자서 작업하는데도 그는 적적하기보다는 즐겁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혼자서 일해 적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저는 좋아요. 즐겁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를 들으면서 조용히 기도를 하기도 하죠. 또 집중하며 일을 하니까 정신건강도 좋아지는 거 같고요.”
자신이 만든 박스가 반품 없이 판매되는 것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제가 여러 공장에서 일을 해봤는데 박스 공장이 먼지는 좀 많지만 그래도 저와 제일 잘 맞는 곳”이라며 “앞으로 정년이 얼마 안 남았지만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뜨거운 여름날, 박스공장 안에는 기계소리가 요란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또 하나의 박스가 박씨의 손을 거쳐 생명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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