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최석우 몬시뇰
최석우(崔奭祐). 최석우 몬시뇰의 한자는 ‘클 석’과 ‘도울 우’를 쓴다.
이름에 담긴 뜻보다 더 크게, 하지만 누구보다 겸손하게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교회사 연구’를 무한한 애정으로 도왔다.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동기였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그를 ‘한국 교회의 국보적 존재’로 부를 만큼 한국교회사에 관한 그의 업적은 실로 크다.
한국교회사의 주추를 놓았던 최석우 몬시뇰. 피와 땀을 흘렸던 선구자가 있기에 지금 여기, 한국 교회가 있고 우리가 있다.
▧ 한국교회사의 맥을 짚다
# 조선에서의 첫 대목구 설정과 가톨릭교회의 기원
1961년 최석우 몬시뇰은 ‘조선에서의 첫 대목구 설정과 가톨릭교회의 기원’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독일 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과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교회사 연구의 선구자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 교회와 역사
최석우 몬시뇰이 한국교회사연구소장으로 재임하던 1975년 창간된 ‘교회와 역사’는 교회사에 관한 연구내용이 실린 교회사전문지다. ‘교회와 역사’를 살펴보면 제2호에 ‘해미순교자의 증언’이라는 주제로 최 몬시뇰의 글이 처음 실렸다. 그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교회와 역사’는 교회사전문지로서 지금까지 ‘410호 발행’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완역, 발간
1980년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전3권이 완간되며 한국교회사 연구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이 책을 통해 초기 한국교회의 100년 역사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석우 몬시뇰은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1976년 한국 교회 2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번역 작업을 시작, 무려 4년9개월에 걸쳐 한글 완역본을 발간했다. 하지만 교회사 연구에 대한 그의 갈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달레의 교회사 연구에 일단 하나의 획을 그었으므로 이제는 달레가 언급하지 않은 시기의 교회사 정립을 시도할 때”라고 의지를 다졌었다.
#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년 한국교회사연구소는 한국 천주교 역사를 5000여 항목으로 훑은 한국가톨릭대사전을 간행한다. 그 중심에는 한국교회사 연구에 헌신해온 최 몬시뇰이 있다. 가톨릭대사전은 현재 신자들의 교회용어와 역사적 배경 등의 이해를 돕는 필수적인 자료가 됐다.
# 뮈텔주교일기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주교 일기의 가치를 일찍부터 깨닫고 있던 최 몬시뇰은 1983년부터 그 사본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로부터 입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번역 작업에 착수해 ‘교회와 역사’에 번역본을 소개했고, 그의 감수 아래 연속해서 책으로 간행했다. 이 일기에는 한국 근대사의 주요사건은 물론 한국 교회의 성장과 변모 등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교회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꼽히고 있다.
▧ 나의 교회, 나의 역사
최석우 몬시뇰은 한국교회사 연구를 위한 저서들을 수없이 저술했지만 고희를 넘기면서 ‘나의 교회, 나의 역사’라는 책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나의 교회, 나의 역사’라는 제목은 스스로 택한 것이며, 자신이 교회사 연구라는 외길을 고집했기에 주위에서 ‘고집쟁이 앤디(미국사람들이 부르는 안드레아의 애칭) 신부’라고 불린다고 전했다.
‘나의 교회, 나의 역사’. 이 제목으로 최 몬시뇰은 왜 그토록 온 생을 바쳐 한국교회사 연구를 고집했으며 갈망했는지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 그에게 교회는 곧 그의 역사며 전부다.
“어쨌든 ‘나의 교회’에 바쳐진 일생은 곧 ‘나의 역사’가 됐다. 나는 그런 점에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고, 무엇보다도 연구소를 지켜주고 발전케 한 우리 순교성인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이 감사한다.”
◆ 최석우 몬시뇰 삶과 신앙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낸 지 채 1년도 넘기지 못한 시점에서 한국 교회는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다. 한국 교회 성직자와 각 성당의 책장에는 대부분 최석우 몬시뇰의 책 한 권쯤은 꽂혀 있다. 그만큼 그의 땀과 열정은 지금도 신앙인들의 서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 시대를 크게 휘젓고 간 최 몬시뇰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본다.
2006년 가을, 가톨릭신문 편집국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는 가톨릭신문 특종 보도(11월 12일자 1면, 20면 보도)를 읽은 최석우 몬시뇰의 전화였다.
“참으로 좋은 보도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산 정약용에 대한 연구가 더욱 붐을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최 몬시뇰은 원로사목자가 된 이후에도 다산 정약용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등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먼지 쌓인 책들(고문서)과 평생 동안 씨름해온 최 몬시뇰의 선종을 두고 사람들은 “한국 교회가 석학 사제 한 명을 또 잃었다”며 안타까워한다.
그의 학구열은 소신학교 시절부터 유명하다. 한 번 책상에 앉으면 몇 시간씩 꼼짝도 하지 않고 책에 파묻혀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 ‘나 홀로 책상형’학생은 아니었다. 대인관계가 원만했으며 인기가 많았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과 소신학교 동창인 최 몬시뇰은 김 추기경의 일본 유학길에 함께 동행했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품 후 수원 북수동본당 보좌와 성신중학교(소신학교) 교사를 잇달아 지낸 최 몬시뇰은 유학을 결심하고 1956년 벨기에로 유학을 떠난다. 최 몬시뇰은 당시 최익철 신부(현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와 함께 살던 셋집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렀다. 최 몬시뇰은 벨기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독일로 옮겨 ‘조선에서의 첫 대목구 설정과 가톨릭교회의 기원’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한국 교회 최초의 교회사 분야 박사학위였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최 몬시뇰은 본격적으로 교회사 연구에 매진했다. 또 전 세계를 다니며 자료 수집에 나섰다. 러시아, 프랑스, 로마…. 사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고, 그 때마다 수북한 사료 뭉치를 들고 귀국하곤 했다. 그리고 고문서를 해독하고 번역하고 발간했다. 분석 자료집도 수없이 냈다. 한 시간, 일분, 일초를 아껴가며 시간을 쪼개 연구한 결과였다. 최 몬시뇰의 그 땀의 결실로 한국 교회 신앙인들은 신앙 선조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최 몬시뇰이 걸었던 걸음은 모두 최초였고, 최고였다. 최 몬시뇰은 2007년 가톨릭신문 80주년을 맞아, 가톨릭신문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을 구했을 때는 또 이렇게 말했다.
“교회와 세상을 향해 물음표를 던지십시오.” 최 몬시뇰의 말은 최 몬시뇰 자신의 삶과 영성, 그 자체였다.
■ 최석우 몬시뇰 약력
▲ 1922. 11. 27 : 황해도 신천군 노월면 출생
▲ 1950. 4 :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졸업
▲ 1950. 4. 15 : 사제서품
▲ 1950. 4 : 천주교 북수동본당 보좌(수원교구)
▲ 1950. 11. 20 : 성신중학교(소신학교) 교사
▲ 1956. 06. 20 : 벨기에 루뱅대학교 대학원 졸업(신학석사)
▲ 1961. 08. 23 : 독일 본대학교 대학원 졸업(신학박사)
▲ 1961. 12 :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
▲ 1962. 12 : 천주교 이문동본당 주임
▲ 1964. 8 :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 1967. 8 : 천주교 서교동본당(구 양화진) 주임
▲ 1970. 1 : 천주교 가회동본당 주임
▲ 1971. 6 : 천주교 명동본당 주임
▲ 1972. 9 : 천주교 삼각지본당 주임
▲ 1975. 5 :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 2001. 2. 23 : 원로사목자
▲ 2005. 3. 10 : 몬시뇰 임명
▲ 2009. 7. 20 : 선종
■ 주요 저서들
《병인박해 자료 연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68.
《신앙과 생활》, 가톨릭출판사, 1972.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한국 교회사의 탐구》 Ⅰ,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교황 그는 누구인가?》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한불 관계 자료(1846-1887)》,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한국 교회사의 탐구》 Ⅱ,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나의 교회 나의 역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한국 교회사의 탐구》 Ⅲ,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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