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대사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열두 사도들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제 열두 사제들은 거리로 나가서 대사제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성령이 하시는 일인지라,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공동체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이제 열두 사도들의 힘만으로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새로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버거워진다. 열두 사도들은 협력자를 필요로 하게 된다. 협력자들은 사도들에게서 그 권위를 이어 받았다. 협력자들은 말씀의 설교, 성사 거행, 공동체의 질서 및 운영을 위해 봉사했다. 협력자들은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직무 사제직을 받은 것이다.
이후 많은 교부들과 공의회에서 사제직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 사제가 있으면, 사제에 대한 규정과 정의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니사의 주교 그레고리우스(335/40~394 이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성찬례에서 말씀의 권능을 지니는 사제의 인격이 사제를 성스럽고 존경할 만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평신도와 직무 사제직에 대한 구별이 확고히 결정된 것도 사도 시대 직후였다.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105이전~135경)는 주교, 사제, 부제를 엄밀히 구분하였고, 주교직 신학을 발전시켰다. 특히 사제직 신학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60경~215이전)에게서 최초로 나타났다. 성찬례에 대한 심오한 분석은 테르툴리아누스(160경~220이후)와 에우세비우스(260/64~339/340)에 와서 더욱 분명하고 심오하게 발달되었다. 이후 1100년대 중엽 들어 교회의 7성사 중 하나에 속하게 된 성품은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정의됐다.
그런데 루터에 의해 이러한 전통적 사제직에 대한 새로운 이의가 제기된다.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제이기에 신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사를 집전하고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이러한 루터의 주장을 부인했다. 공의회는 「미사의 신성한 희생에 대한 규정」에서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말로 사도들을 축성했다고”고 강조했다. 가톨릭교회에서 최후의 만찬은 개신교에서 말하듯 단순한 종교적 만찬이 아니다. 희생적 식사였다. 그래서 개신교에선 성찬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만큼 사목자도 단지 가르치고, 설교하고,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보는 역할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톨릭 사제는 다르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자신이 한 것처럼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사제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가톨릭 사제의 직무는 희생적이고 전례적이고 사목적이게 된다. 단순히 가르치고 설교하고 양떼를 돌보는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제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은총과 표지는 가톨릭 사제 서품식에서 성령에 의해 전달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신약성경을 보면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찬의 제사를 받았다. 따라서 새롭게 볼 수 있는 외적인 사제직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주님의 몸과 피를 축성 봉헌 관리하는 권한과 죄를 맺고 푸는 권한이 사제직 안에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주어졌음을 성경이 밝히고 있고, 또 가톨릭교회의 전통이 항상 가르쳐 왔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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