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걸어 들어오면서 신부를 찾았다. 얘기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임금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문제냐고 물었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내가 신부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니까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아니, 강하게 요구(?)했다. 그래서 상담소로 들어가서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 친구 혼자서 거의 30~40분 이상을 이야기했고 그때 느낌은 이 친구가 뭔가 안정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의 이름은 ‘이페부난두’라고 했으며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3년여 기간 동안 미등록노동자로 살고 있었다. 동해지역에서 닭을 키우는 농장에서 일하다가 주인이 출입국관리소 직원을 불러서 붙잡으려 했기 때문에 도망쳐 나온 후로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로 왔다가 의정부 지역으로 왔는데 여기서도 사람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에 답답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으며 자신을 두고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심리적인 문제로 보였다. 3년여 기간 동안 미등록 노동자로 지낸 것이, 언제 잡힐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은 그를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는 불안함을 가중시켜서 신경증적인 증상을 가져온 것 같았다. 그리고 함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내 마음이 문과 같은데 열쇠가 있다면 활짝 열어 보이고 싶다”고 하면서 답답함을 호소하고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고 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충실했던 종교적인 생활이 여기에서는 쉽지 않기에 심적으로도 편하지 않다고 하면서 “걸어 다니는 시체”, “spiritual freezing” 상태라고 호소하였다. 또한 미등록노동자였던 그의 약점을 이용하는 한국인에 대한 불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이 단순히 임금문제나 공장문제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은 정신병적인 증세도 있지만 함께 지지해 줄 수 있고, 말하는 것을 들어주고 함께 종교적인 것을 나눔으로써 안정을 찾고 있다는 것에 놀랐으며 처음에 섣부른 판단을 한 나 자신에 놀라기도 했다.
인간은 다른 상황 속에 던져진다면 불안해하고 그에 따른 신경증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서 동포를 그리워하고 모국어로 말하는 것,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 사람을 신뢰하고 싶어하기도 하며 동시에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더 본질적인 것은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섬을 느끼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나도 이 땅에 흘러들어온 이들을 그냥 경제적인 동물로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 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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