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이렇게 기구한 인생도 있다
아버지는 작은오빠 생일 선물로 사탕을 사기 위해 가게에 들러 물건을 고르던 중이었다. 그때 과속하던 트럭이 갑자기 가게로 돌진했다. 부산에 살던 이주연(소화 데레사)씨는 두 살 때, 그렇게 아버지와 영원히 작별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고 소식을 접한 큰언니는 놀라서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 발을 삐끗하며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언니는 이후 간질로 고생하게 된다. 7남매를 키워야 하는 어려운 가정 형편은 언니 병치레로 더욱 기울어졌다. 아버지 역할을 하던 큰오빠도 이씨가 12살 때 익사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그해 가을 한가위를 6일 앞두고 돌아가셨다. 이후 가정은 둘째 오빠가 신문배달을 하며 어렵게 꾸려 나갔다.
이씨는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5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 회사원으로 일했다. 밝고 명랑한 성격의 이씨는 대인관계가 원만했다. 회사에서는 일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조금씩 생활의 여유도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하지만 불행은 이씨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혼을 2~3개월 앞둔 어느 날이었다. 건물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빨랫줄이 갑자기 끊어졌다. 좁은 공간에서 위태롭게 빨랫줄을 연결하던 이씨의 몸이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중심을 잃고 아래로 추락했다. 목이 부러지고, 어깨가 탈골됐다. 뇌에도 큰 손상을 입었다. 이씨는 의식을 잃었다. 친구가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지만 의사는 “가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장례 준비를 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보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평생 동안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욕창이 점점 심해졌다. 몸은 썩어 들어갔다. 욕창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질 때도 많았다. 이대로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명은 참으로 질겼다. 욕창으로 인해 병원에 실려간 이씨에게 의사는 말했다.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이 사람 아직도 살아있네.”
# 세상에는 이렇게 감사하는 인생도 있다
7월 19일 가평 꽃동네에서 만난 이씨의 얼굴은 밝고 맑았다. 16년 전 사고 당시의 죽고 싶어했던 모습을 읽을 수 없다. 2000년 4월 경기도 가평 꽃동네 장애인 요양원(희망의 집)에 오면서부터 생긴 변화다. 꽃동네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찾아왔던 그는 이듬해 12월 세례를 받고 소화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얼굴도 점점 꽃을 닮아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감사할 뿐입니다. 이웃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 모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또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했다.
“장애인이 된 저를 이웃들이 만약 버렸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이 있었기에 저는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밥 먹는 것, 숨 쉬는 것 하나하나까지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찾아온 한 봉사자가 말했다. “당신을 보면 삶의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이씨는 “나를 보고 용기를 낸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씨는 언젠가 이런 글을 썼다.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많은 선물 중에 감사한 것은 어깨 위를 쓸 수 있다는 축복이다. 목을 움직이고 두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작은 입술로 이것저것 남을 돕기도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랑하는 인생도 있다
이씨는 재주가 많다. 감사하는 삶으로 바뀌자 의욕이 생겨났고,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재주들을 발견하게 됐다. 이씨는 그림을 그린다. 입으로 그린다. 틈날 때마다 카드에 그림을 그리고 이웃들에게 선물한다. 최근에는 피나는 재활노력으로 간신히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된 어깨와 팔을 이용해 캠퍼스 그림에도 도전하고 있다. 글재주 수준도 보통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한국장애인문화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해 문예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살려주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씨는 하느님이 주신 이 작은 재주들을 사랑을 위해 쓴다. 매일 그린 카드를 바자회에 내놓아 번 돈으로 매년 교도소 등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기도 한 이씨는 도움을 주는 지인들과 꽃동네 후원회원들, 노숙자들,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 외국의 어려운 이웃들,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늘 묵주알을 굴린다. 세상을 사랑하기에 이씨는 꽃을 그린다. “많은 이들이 꽃동네를 꽃이 많은 동네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꽃처럼 맑은 사람들이 많아서 꽃동네입니다.”
또 말했다. “저도 인간인데 왜 미워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도 절 미워하게 됩니다. 나부터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이씨는 언젠가 이런 글을 썼다.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어느덧 사랑을 서로 나누는 사람이 되어 이젠 텔레비전에서 어려운 이웃을 보고 듣게 되면 내가 어렵고 아픈 것 같이 안타까움을 느낀다. 사회에서 잃어버린 마음을 나는 꽃동네에서 다시 찾은 것 같다. ‘사랑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목숨이 있는 한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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