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카드와 편지지를 곁에 뒀다. 필기구도 한 움큼씩. 때때론 무더기로 쌓인 카드에 며칠씩 묻혀 지내기도 했다. 상대가 누구든 답장은 짧게라도 꼭 보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썼던 편지 수는 헤아리기 힘들다. 게다가 한 줄 한 줄 꾸밈없이 소박하게 써내려간 글귀,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기도를 담아낸 글귀여서 그 여운은 더욱 길다.
이 러브레터를 가장 많이 받은 주인공은 사제들이었다.
김 추기경을 떠나보낸 지 5개월째…. 변종찬 신부(가톨릭대 교학부처장)가 꺼내든 카드는 방금 쓴 듯한 필체가 가득했다. 1996년 3월 9일. 본격적인 해외유학에 앞서 어학연수를 시작한 변신부에게 보낸 카드였다.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어학 코스를 시작하면서, 당시 교구장님이셨던 김 추기경님께 잘 도착했다는 편지를 드렸습니다. 사실 교구장에 대한 의무적인 보고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답장에 가슴 뭉클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변 신부는 김 추기경에게 받은 카드를 이탈리아 신부님들께 보여주며 내심 자랑했다고 덧붙인다. 서품을 받은 지 3년을 갓 넘긴 사제에겐 격려의 선물과도 같았다.
“어학부터 유학 여정이 만만찮게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카드 한 장에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힘겨움과 서글픔 등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어요.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죠.”
변 신부는 각종 업무와 일상생활을 통해 김 추기경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수많은 대화보다 이 한 장의 카드로 김 추기경의 체취와 따스함을 더욱 절감했다고.
“선배 신부님 말씀으론, 한 번은 추기경님께서 로마 시노드 참가 중에, 당시 교구 전 사제들에게 친필 카드를 보내셔서 모두가 감탄한 일도 있었다고 해요.”
변 신부가 꺼내든 또 하나의 카드엔 인쇄글과 친필이 섞여 있었다. 카드 맨 아래 구절이 눈길을 끈다. ‘손목의 불편으로 직접 답하지 못함을 널리 양해하여 주기 바랍니다.’ 손수 쓰지 못한 것이 그렇게도 미안하셨나. 그 카드에도 받는 이의 이름과 자신의 서명, 간단한 메시지는 친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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