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 서한에 대하여
여섯 번째 서한 가운데 핵심이 되는 부분은 최양업이 부제가 아닌, 사제의 신분으로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편지를 썼다는 점이다.
이번 편지는 최양업이 ▲지난번 조선 입국에 실패한 이후 조선에 재입국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또 다시 실패했다는 것과 ▲사제품을 받은 후 더욱 믿음이 굳세졌다는 것 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또한 이번 편지에, 결코 실망하지 않으며 그간 단념했던 육로 입국을 다시 감행하고자 곧 요동으로 떠날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실어 보냈다.
■ 상해에서, 1849년 5월 12일
최양업은 상해에서 머무르는 것을 ‘귀양살이’로 표현하며 조선에 입국하지 못한 비탄한 심정을 편지에 상세히 토로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어려움들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아마도 저는 천상의 도움을 애원하는 데는 너무나 소홀하였고, 인간적 희망에 너무 의존했으며 또한 무수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이라 여겨집니다.(중략)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 저의 주님이시여, 만일 제가 당신 분노의 원인이라면 저를 바닷속 깊이 던져 주시고, 당신 종들의 참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최양업은 지난번 편지에 이어 다시 두 번째 해로원정 시도를 이야기한다. 조선의 신자들과 미리 약속을 한 후 마카오의 선박 한 척을 타고 백령도로 향한 것이다. 그는 편지에서 그곳이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곳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양업은 조선 땅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정확하지 못한 해로를 따라 운항하여 다른 섬에 정박한 것이다. 백령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그들은 이렇게 엇갈렸다. 위험에 빠진 그들은 다시 상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금년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다시 한 번 육로로 다른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며칠 후 페레올 주교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요동으로 떠나겠고, 다가오는 겨울에는 변문으로 가겠습니다.”
최양업은 조선 입국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린 후 자신의 사제서품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사백주일(부활 제2주일, 4월 15일)에 지극히 공경하올 마레스카 주교님으로부터 저는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고귀한 품위에 언제나 합당한 자로 처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미천함과 연약함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최양업은 사제서품 이후 더욱 굳센 믿음을 갖게 된다. 또한 사제라는 신분에 맞갖은 본분과 행동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저에게 주어진 본분은 하느님 앞에서 모든 신부님들과 저의 동료들을 더 자주 더 열렬히 기억하는 것입니다.(중략) 신부님들도 저와 우리 불쌍한 포교지를 위해 같은 일을 하고 계시고 또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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