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대리구장 김영옥 신부는 은퇴 감사 미사를 3일 앞두고 교회 언론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회 안에서 사제로 살아온 것은 형언할 수 없는 행운이고 은총이고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김영옥 신부의 사제로 살아온 38년 땀과 이에 따른 은총과 축복의 이야기를 7월 23일 성남대리구청 집무실에서 들었다.
▲ 신부님께서 사목일선에서 물러나시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은퇴를 앞둔 소회를 말씀해 주십시오.
- 우선 감사한 생각이 앞섭니다. 은퇴를 하는 이 시점까지 하느님, 교회, 부모님, 사제단으로 남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밖에 없습니다. 일반 사목생활에서 깨달았으면 더 잘 살았을 것 같은데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사제생활을 하면서 큰 축복은 사제단에 속해 있었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사제들이 사제 생활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을 했던지 간에 똑같이 대해줍니다. 잘한 사람이건 못한 사람이건 똑같이 대우해줍니다. 바로 이러한 교회가 어머니이신 교회입니다. 지난 7월 17일 대리구 사제단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도 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과오가 있어도 늘 덮어준 신자들의 기도 때문입니다. 기도는 잘못 많고 과오가 있어도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신학생 시절, 도중에 신학교를 나간 친구도 있고 신부가 되기 전에 죽은 친구도 있습니다. 신부가 되자마자 죽은 친구도 있고 신부 생활을 하다가 나간 친구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 사람들 모두를 있는 그대로 만족해 하십니다.
저는 앞으로 사제성화를 목표로 사제로 계속 살아가겠습니다. 사제로 서품된 후 첫 미사 때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단 한 가지만을 바랐습니다. 바로 ‘교회에 속한 하느님의 사제로 무덤에 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때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은퇴를 맞는 것 또한 감사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섭섭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감사하는 마음과 은혜를 받았다는 느낌이 더 큽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니 기쁘고 즐겁습니다.
▲ 교구 대리구제 시행 후 첫 성남대리구장으로 임명되신 후 지금까지 성남대리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대리구장직을 떠나는 마음은 어떠신지요. 또 앞으로 대리구와 교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지금 생각은 섭섭함과 시원한 마음이 둘 다 있습니다. 교구에 대리구제가 처음 도입된 만큼 대리구장으로서 기초를 잘 놓고 싶었습니다. 주교님을 도와 신부들을 돌보면서 원하는 바, 뜻한 바를 이루려 애썼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선 신부들이 변해야 모든 다른 것들도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자생활이 평화를 느끼고 기뻐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신자들이 기쁘게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자들이 잘 일할 수 있도록 조금만 돕는다면 평신도들은 어디서든 신명나게 일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신이 나서 일하고 봉사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신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짐을 버리고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더 잘 이뤄지지 못 한 것 같아 가장 아쉽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앞에서 적극적으로 이끌고 나가지 못했던 점이 작은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복음 선포도 모두 평신도들이 하는 일입니다. 쉬는 신자 회두도, 성당 봉사도 모두 평신도들이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가 의욕을 갖고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도 조직적으로 많이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본당 사목회는 아직도 너무 큰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칙이 필요합니다. 본당의 각 신부님들마다 사목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려면 더더욱 세칙이 필요합니다.
물론 주일학교 운영비까지 세칙으로 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 행정에 대한 틀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도회 장상들을 만날 때도 수도회 차원에만 시야를 두지 말라고 늘 강조했습니다. “왜 일벌들만 있냐”고 말합니다. 본당 수녀가 관리 부분을 맡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불만이 표출하는 근본 원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녀가 본당 한 단체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면 이를 특별한 권한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당 각 단체 운영은 평신도들이 직접 하도록 해야 합니다. 수도자는 봉사를 하고 성경 말씀으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현대의 평신도는 예전과 달라서 사회적으로 지위도 높고 지적 능력도 높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자신보다 못한 수도자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은 수도자들이 평신도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경받는 수도자가 돼야 합니다. 베트남의 구엔 반 투안 추기경은 “교회가 관료적이면 이미 교회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관료적 느낌을 풍기면 안 됩니다.
1996년 교구에서 사제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이 설문조사에서 사제의 모습을 권위적이고 관료적이라 지적하고 기도하는 사제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제만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느님의 소리입니다. 지난 7월 17일 대리구 사제들을 마지막으로 만나 자리에서도 그렇게 당부했습니다. 기다리지 말고 신자들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이런 것 때문에 세부 지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결정권을 평신도들에게 주고 사목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 스스로도 아주 잘 할 수 있고 의욕도 넘칩니다. 신자 자율에 맡기고 사제는 보고만 받아도 됩니다. 평신도 스스로 너무 잘합니다. 교회 정신이 부족한 것은 교육을 통해 채워주면 됩니다. 신자들을 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미래는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높은 차원의 역할을 부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역할을 분담해야 교회가 삽니다.
운영자의 마인드도 중요합니다. 운영하는 사람이 잘하면 밑에서 움직이는 사람도 좋습니다. 교회에서는 이를 영성으로 교육해 왔습니다.
또한 행정적 체계가 바로 서야 합니다. 모든 것을 문서화 해두고 그에 따라 움직이면 됩니다. 신부의 행복은 신자들에게 있습니다. 교회의 희노애락이 바로 신자들에게 있습니다. 사제들이 신자들과 교류하고 융화돼 일에 대한 분담체계를 잘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공동체 및 청소년에 대한 문제도 신부님마다 모두 생각이 다릅니다. 사목자의 마인드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평신도의 소중함을 잘 알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관리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관리가 말 그대로의 관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사목일선에서 생활해 오신 세월이 벌써 38년이 됐습니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사제생활 중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입니까.
-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생활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주일마다 미사에 나오는 신자들을 보면 항상 기뻤습니다. 내가 그들을 반긴다는 것이 표정에 다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자연히 신자들도 기뻐했습니다. 미사를 드리며 신자들과 복음말씀을 나누고 강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본당에서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뻤던 일이 더 많았습니다. 대리구장 발령을 받고 수지본당을 떠나면서, 신자들과 가까이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수지본당에서부터 신자들이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다 완성하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많은 신부님들이 신부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후배사제들에게 혹시 남기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 신부는 행복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행복하라고 사제로 불러주셨습니다. 내 자신이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내 자신에게서 문제가 비롯된 것입니다. 행복하려면 마음이 평화로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것과는 다릅니다. 실망스러운 일이 닥치더라도 예수님과 함께하면 평온함을 느낍니다. 이런 평화를 느끼기 위해선 맡겨진 소임을 사랑해야 합니다. 신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신자 중에서도 좀 위축된 신자들에게 시선을 더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랑과 평화가 생깁니다.
본당사목을 할 때 자주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행복하려면 마음이 평화로워야 하고 평화로우려면 어려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제는 참으로 복 받은 직무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좋은 하느님을 저에게 알려주시고 사랑과 용서, 감사를 알려주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고마움도 큽니다. 장상에 대한 고마움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사제생활의 축복입니다. 사제는 민초들과 쉽게 어울려야 한다. 나 홀로 살아서는 사제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은총을 체험하기 힘듭니다. 사제단과 속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제단과 함께하면 이런 은혜를 쉽게 얻게 됩니다.
▲ 성남대리구장 후임으로 현 평택대리구장이신 조원규 신부님께서 오십니다. 혹시 후임 대리구장 신부님께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우선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대리구의 틀도 제대로 다지지 못한채 물려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조원규 신부님은 이미 대리구장을 하신 분이시니까, 아마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해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조원규 신부님과 함께하면 성남대리구도 한층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계획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사제로서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바보스런 일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오직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저는 그냥 따를 뿐입니다. 구체적 거처 등 생활에 대한 계획이라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과천에 있는 한 수녀원에 가서 수녀님들과 생활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은퇴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강론을 늘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녀원에 가면 이 모든 아쉬움도 모두 다른 큰 것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묵상과 기도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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