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만 사제가 아니다. 모든 신앙인이 사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제직’이라고 말할 때의 사제직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제는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중재자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백성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적 사제직을 이행한다. 이와 같이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사제직을 공통 사제직 및 일반 사제직이라고 한다. 이 사제직은 일상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한다. 즉 모든 신앙인들은 삶 안에서 희생과 말씀의 봉사로 그리스도의 사제 직무를 수행한다.
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제직은 일반 사제직의 바탕 위에서 특별한 직위를 받는 것이다. 이는 교회 구성원 중 별도로 축성된 성직자가 수행하기에, 교계적 사제직·직위적 사제직·서품 사제직이라고 한다. 분명 직위적 사제직은 그 처한 독특한 지위로 인해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한 특권과 권한 및 의무를 별도로 갖는다.
그렇다고 해서 직위적 사제직의 역할이 평신도들의 역할과 분리되지 않는다. 다만 구별될 뿐이다. 남녀가 한 가정을 이뤄 가정 성화를 위해 노력해 나가는 그 지향점은 공유하지만, 역할이 다른 것과 비유할 수 있다.
사도들이 물려받아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이 직위적 사제직에 대한 기본적 통찰은 바오로 서간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1코린 4,1)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2코린 3,6)
이러한 직위적 사제직의 원형은 공통 사제직이 그렇듯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사회 지도자와 달리, 교회의 사제들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마태 20,25-29 마르 10,42-45)처럼 한없이 낮아져야 한다. 종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직위적 사제직은 진정한 사제직이 될 수 있다.
물론 사제들도 인간이다. 실수하거나 때로는 불편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사제적 권위를 남용할 수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제직 자체에 내재된 힘을 거부할 수는 없다. 직위적 사제직의 근원이 그리스도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루카 22,19 1코린 11,24-25)
직위적 사제직의 목적은 신자들의 성화다. 이 성화의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은총 충만한 전례행위다. 전례행위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은총의 통로는 성사다. 물론 전례가 교회 활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사제직은 이 전례행위의 중심에 있다.
사제직의 목적은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늘 울타리 밖을 지향한다. 울타리 밖을 향하는 방법은 겸손과 봉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직 권위의 본질’을 봉사로, ‘사제직 권위의 특성’을 겸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사제직은 겸손과 봉사의 삶 안에서 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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