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있었던 작품을 여행 중에 만나는 일은 옛 친구를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만큼이나 반가운 일이다. 보스턴에 위치한 파인 아트 박물관에서 만난 틴토레토의 ‘수산나와 늙은이’라는 작품이 그러했다. 이 작품은 내가 쓴 「명화로 읽는 성서」라는 책에서 소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미국의 보스턴에서 딱 만나게 된 것이다.
‘베네치아의 라이벌들 -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 박물관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특별전의 제목이다.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는 베네치아 회화의 황금기인 16세기 중. 후반 이 도시를 대표했던 세 미술가이다. 이들은 로마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당당히 겨룰 수 있었던 당대 최고 대가들이었다. 멀고 먼 미국 땅에서 이들 베네치아 거장들의 대표작들이 다수 전시된 특별전을 보게 되다니 3만원이나 하는 고액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미술작품을 사진이 아니라 직접 감상하다보면 가끔 흥미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나는 특별히 그림 속 인물들의 손에 관심이 많은데 언제부터인가 너무나 유명한 대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손이 두루뭉술하게 그려진 경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티치아노의 경우가 그러했다. 티치아노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시 유럽 최고의 통치자였던 황제 카를 5세의 전속화가이자 당대 최고의 권력가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대가다. 특별전에는 때마침 티치아노 초상화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교황 파울루스 3세’가 전시되어 있었다. 멀리 나폴리에서 이 특별전 때문에 먼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파울루스 3세는 로마의 명문 파르네세 가문 출신으로 교황이 되고 나서 티치아노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리 교황이라 하여도 티치아노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돈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이 작품의 제작을 성사시키기까지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교황이라 하면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는데 일개 화가의 스케줄 조정에 공을 들여야 했다니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그의 초상화를 한 점 가지려면 적어도 2년 전에 예약을 해야 했고 또 돈만 지불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니 말이다.
왜 티치아노를 색채의 대가라고 부르는지 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교황이 입고 있는 모체타라 부르는 검붉은 벨벳이 주는 색채의 아름다움과 흰색 옷감과의 조화를 보라. 이 작품에서 연로한 교황 파울루스 3세는 사려 깊으나 냉정해 보인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검은 눈에서 힘이 느껴지며 마른 손가락은 주인공의 빈틈없는 성격을 말해주는 듯하다. 여기서 잠시 독자께서는 주인공의 손을 자세히 보시라. 얼굴이 주는 섬세함을 손에서도 완벽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화가가 조수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완성을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사실 교황의 초상화는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라 국가적 상징물이었다. 어찌 화가가 직접 그리지 않고 조수의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다음 주에 소개하게 될 틴토레토의 ‘수산나와 늙은이’는 바로 손의 표현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독자께서는 지켜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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