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기뻐 뛰노니
첫영성체 교리를 위해 한 달 동안 매일 성당엘 갔다. 그리고 교리공부가 끝나면 아이들과 성모상 주변에서 놀았다. 성당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리고 성모상은 담장 밖에 세워져 아래쪽 마을을 바라보고 계셨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인 그 때 성모상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감싸주시는 어머니의 따뜻함이었다. 또 연로하신 할머니의 성경책 갈피에는 낡아진 팸플릿이 꽂혀 있었는데, 지금의 레지오 단원들이 사용하는 까떼나 용 별지였다. 겉표지는 성모님 상본이었고, 안쪽에는 양쪽으로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해와 같이 빛나며 달과 같이 아름다운 저 여인은 누구신가!”와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느니…”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 때 ‘성모의 노래’(Magnificat)를 보았다는 것이 지금도 설렌다. 신학생 시절부터 매일 바치는 이 기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미가이다.
역경을 이겨내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 대한 교회의 성대한 기념도 중요하지만, 신앙인 각자에게는 어쩌면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천상영광에 선행되었던 그분 삶의 십자가와 하느님의 사랑에 근거한 모성적 사랑을 깊이 묵상함도 좋을 듯하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엘리사벳을 방문할 당시에도 성모 마리아의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보인다.(루카 1,26-38 참조)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감당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소박한 인간의 마음이 안개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럼에도 기다리고 간직하고 지켜주시는 어머니(마태 1,18-25 참조), 역경을 이겨내는 어머니(마태 1,13-15)로서 구원의 여정에 응답하셨다.
성가정의 사랑을 꽃피운 나자렛의 어머니(루카 2,29-40), 생활의 곤란함을 깊이 배려하시는 위로의 어머니(요한 2,1-12), 예수님께 하셨듯이, 상처나고 뚫린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지시며 깊이 안아주시는 통고의 어머니이시다. 요한을 통해 언제나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시는 어머니(요한19,25-27), 열렬한 신앙으로 언제나 성령 안에 머무시는 우리네 다락방의 어머니다. 이렇듯 성모님은 삶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께 대한 믿음 안에서 바라보고 승화시킨 참된 영성생활의 전형이시다. 성모님의 가난한 마음은 하늘에 닿을 진실한 믿음과 찬양의 노래로 당신의 삶을 승화시키셨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자의 영혼이 얼마나 든든한지를! 삶이 그만큼 아프고 힘겨웠기에 성모님의 노래는 우리의 경직된 영혼을 흔들고, 신앙의 진실함을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루카1,48-49)
우리 마음을 사랑의 제물로 봉헌
‘성모의 교황’이라 불리는 교황 비오 12세께서 “원죄가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현세생활을 마친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밝히고 이를 선포하는 바”(Munificentissimus Deus, 1950)임을 천명하신 데에는 이러한 성모님의 신앙 여정에 대한 깊은 통찰과 관상이 있었음이다.
어릴 적에 스쳐본 이 ‘성모의 노래’를 오늘 다시 마음에 새긴다.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께 의탁하며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한 이들과 함께 부르는 위로의 노래, 단순한 일상 안에서조차 지치고 아파하는 우리 마음과 영혼을 믿음과 사랑의 제물로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으로 느껴진다. 이기심과 물질적 가치관으로 신앙의 위기에 처한 작금의 세태에 하느님께서 가난한 마리아를 통해 내려주신 내적 치유를 위한 선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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