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은 거의 대부분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목자였고, 많은 교부문헌들도 사목적 동기로 탄생했다. 그러나 실제로 교부들은 사제 직무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대부분 주저하고 망설였다. 어떤 교부들은 그 직무를 피하게 해 달라고 날마다 탄식하며 기도하였고, 갑작스런 사제 임명 소식에 당혹스러운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또 어떤 교부들은 아예 서품식에 나타나지 않거나 사제품을 받자마자 도망쳐 버리기도 했다.
예컨대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는 고독하고 고요한 삶을 열망하고 사랑했으나 나지안느 지방의 신자들과 그곳 주교의 바람을 차마 저버리지 못하고 362년 사제품을 받았다. 주교직 임명을 받는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도, 교황에 선출된 대 그레고리우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교부들은 사제직이 주는 영예와 권위를 생각하기에 앞서 사제직무의 참 뜻을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 보배로운 직무를 받아들이기에 스스로 얼마나 부족한지를 절감하였다. 그리고 그 직무는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의 몫까지 하느님 앞에서 셈을 치러야 할 무거운 십자가라는 사실을 밝히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주교 서품 기념일에 행한 「설교」(293년경)에는 교부들의 이러한 공통적인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다.
“형제 여러분, 오늘 저는 제가 가진 책임의 무게를 더욱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물론 이 무게를 밤낮없이 생각하여야겠지만, 특별히 제 서품 기념일인 오늘은 더더욱 저로 하여금 그 무게를 가늠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주교된 햇수가 늘어가면서, 아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점차 줄어들면서 저는 언젠가는 오고야 말 마지막 날이 점점 다가옴을 느낍니다. 그날 여러분에 대하여 하느님 대전에 셈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책임의 무게를 달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여러분과 나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날이 오면 단지 여러분의 몫만을 셈하면 되지만, 저는 여러분에 대한 셈까지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 짐의 무게가 더 크고 무겁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주교 직무는 권력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제직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짐을 함께 지는 일이었고, 연약한 사람들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는 수난의 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제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이 저를 두렵게 하지만, 제가 여러분과 ‘함께’있다는 사실은 저를 위로해 줍니다. 실제로 여러분을 위하여 저는 주교지만, 여러분과 함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전자는 직무의 이름이며, 후자는 은총의 이름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제가 여러분과 함께 구원된 존재라는 사실이지, 제가 여러분의 우두머리로 뽑혀 세워졌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 이 글은 가톨릭대 출판부의 「신학과 사상」 44호에 실린 최원오 신부의 ‘교부들의 사제영성’을 요약·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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