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앞두고 화폭 위에서 50년간 붓에 기대어 살아온 삶을 돌아본다. 뜨거웠던 젊음도 물감 속에 녹아내렸고, 삶이라는 굴레에서 방황하던 날들, 허공 속 자신을 찾으려 그렇게 보낸 시간들.
나는 국전을 통해 화단에 참여하면서 즐겨 양을 소재로 했다. 사실작가인 나로서는 믿음이라는 추상적 이상을 표현하기엔 넘지 못할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다 방효익 신부님을 만나면서 그 벽을 넘어 성화(聖畵)작가로 서게 되었다. ‘한 달란트’ 말씀이 나를 축복 속에서 살도록 길을 열어 주셨기에 항상 감사하며 주님 앞에 찬미와 영광을 바친다.
신앙의 추상적 의미들(사랑, 믿음, 성령, 부활)은 감당하기 벅찬 소재였지만 신부님의 권유로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성경필사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매일 새벽 화실에는 불이 밝혀지고 기도를 시작으로 4년 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가는 것이 나의 삶 자체가 되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흐르는 말씀을 통해 나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화폭을 휘감는 붓은 말씀을 통한 기쁨으로 힘이 주어지며 말씀을 그리는 작가로 방향을 옮기게 되었다.
인사동 화랑에서의 초대전 ‘12사도전’을 시작으로 방효익 신부님의 저서 ‘십자가의 길’을 거침없이 표현함에 이르렀다. 숨 돌릴 겨를 없이 삼가동성당 제대화 ‘십자가의 영광’(4천호)을 봉헌하기에 이르렀다. 그간 많은 작품을 하는 가운데 하느님은 늘 함께하고 계셨다. 어느 자매는 ‘아베 마리아’란 작품 앞에서 성가정을 위해 기도한다며 벅찬 감사의 인사를 전해온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리라’는 말씀처럼 수십 점의 성화가 각각의 장소에서 신앙으로 피어 살아서 그 뜻을 키워가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회화성을 통해 신앙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며 감상하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생명의 양식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빛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 위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여기 내 화실에는 제작 중인 ‘오소서 성령이여’란 성화가 펼쳐져 있고 그 옆 필사중인 요한복음이 펼쳐져 있다. 화폭 앞에서 묵상해본다.
모든 것 주님께 받은 것이니 나는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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