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6일 퇴임 및 은퇴미사를 봉헌하십니다. 35년간의 사제생활을 회고하신다면?
- 외국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공부하는 동안 교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왔습니다. 귀국 후에는 신학교와 본당주임으로도 살았고 대리구장으로도 일했습니다. 하느님 포도밭에서 골고루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 휴스턴한인본당 초대 주임신부로 갔을 때입니다. 신부로 처음 맞이한 성탄 때 신자들에게 세례성사를 베풀고 봉헌했던 첫 미사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신자들에게 많은 사랑도 받았지만 ‘아~하느님의 사제로 불림 받아 살아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해 온 ME 활동으로 사제생활에 활력을 받았어요. 신학생들과 10여년간 함께 지낸 것도 기억에 남죠. 신학교를 통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교육 받고 활기차게 사제생활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이었죠. 분당요한본당에서 7천여명의 신자들과 함께 ‘성체거동과 함께 하는 한마음대축제’를 열었을 때, 그리고 최근 대리구 모든 신자들과 신앙대회를 열었을 때도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 교구 대리구제 시행과 함께 안양대리구장으로 임명되셨고 3년간 대리구제가 기틀을 다지는데 헌신하셨습니다.
- 대리구 제도가 시행되면서 대리구 신부님들과의 일치와 교류, 친교가 더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대리구의 여건을 감안해 그 특성에 맞는 활동들을 세분화해서 잘 할 수 있었습니다. 대리구제 시행으로 주교님들께서도 교구 전체 사목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리구제도가 아직 3년밖에 안 된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신부님들이나 모든 대리구의 신자들이 대리구 제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애착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대리구가 생겨서 ‘참 좋다’는 느낌을 신자들이 가질 수 있도록 대리구 차원에서 신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대리구제는 ‘옥상옥(屋上屋)’이 아닙니다. 대리구와 본당, 본당 신자들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것입니다.
▶ 후배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 그동안 제가 서품 받을 때 택했던 말씀(요한 21, 15~17)을 따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느님 신자들,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제로서 가져야 할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을 돌볼 수 있는 제일 큰 자격은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제들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술과 실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나눔에 눈을 뜨고 모두가 동반자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한국교회도 더욱 신선해지고 맑고 향기로워지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우리 교회가 본당 신부 주축이 아니라 평신도 역량이 많이 활용되는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더 많이 교육 받고 준비 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아프리카로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 많은 신자들께서 돌봐주시고 기도해주셔서 사제생활을 큰 어려움 없이 해 온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정말 필요한 이웃들과 나눠야 하는데 이런 면이 제일 부족했습니다. 여생에서 만이라도 좀 나누고 버리고 떠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2005년 킬리만자로 등반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등반을 하면서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나도 마지막 사제생활을 이곳에 와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예외 없이 어려운 이웃이 많으니 살아보자 결정한 것입니다. 주책이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곧이어 주책을 좀 부리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이런 건강을 주시는 한 정말로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과 함께 동고동락하고 나눠보는 그런 어려운 삶에 도전해보려는 것입니다.
▶ 쉽지 않은 도전이실 텐데요. 아프리카에서는 어떤 계획을 세워놓고 계신지요?
- 제가 가게 될 곳은 아프리카 잠비아 솔웨이지교구 ‘마냐마’라는 지역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로 2시간30분을 간 뒤 그곳에서 차로 500km를 더 가야 되는 곳이에요. 구리광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성당이 없어요. 현지에서도 선교지를 이곳에 열었으면 좋겠다고 해 결정했습니다. 많이 베풀고 큰 일 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그들에게 의지가 되고 하느님 말씀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갈 수 있는 힘만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풀기보다는 그들 안에서 정화되고 노후가 그들과 함께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회복지가 전공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파악하고 그들의 영적·물적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쁨과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 은퇴라는 서운함보다는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이 더욱 강하시겠습니다.
- 이제까지 지니고 누리고 취하는 삶이었다면 여생은 내려놓고 버리고 홀가분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제로서는 은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는 나름대로 새 꿈을 갖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겁니다. 새 꿈을 가지게 됐다는 것 때문인지 요즘은 ‘아 참 사제직은 소중하고 좋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는 또 사제로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참 행복하게 살았고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한상호 신부는 9월 2일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에 나선다. 피정을 겸해 순례를 결정했다는 한 신부는 급하게 경주하지 않고 걸으며 사제생활을 되돌아보고 아프리카로 가기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고 전했다. 한 신부는 올 10월말 아프리카 잠비아로 떠날 예정이다.
■ 한상호 신부 약력
- 1974년 9월 28일 사제서품
- 1977년 10월 미국 휴스턴 한인천주교회 담임신부
- 1978년 9월 미국 세인트루이스 천주교회 담임신부
- 1982년 1월 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천주교회 본당신부
- 1986년 3월 5일 서둔동본당 주임
- 1987년 2월 19일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 1994년 8월 19일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 1999년 1월 26일 화서동본당 주임
- 2003년 1월 28일 분당요한본당 주임
- 2006년 5월 22일 안양대리구장
- 2009년 8월 16일 퇴임 및 은퇴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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