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성가 ‘보아라 우리의 대사제’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제서품 후보자들과 사제단, 최덕기 주교, 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차례로 입장하며 서품예식의 막이 올랐다.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나를 보내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 하신 제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 성령께서 양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교회를 돌보게 하신 제2독서 사도행전의 말씀이 봉독됐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양떼의 감독들이 되어 교회를 돌보게 될 20명의 사제서품 후보자들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눈을 감고 말씀을 묵상했다. 복음 환호송이 울려 퍼졌다.
“너희는 가서 만민을 가르치라. 이 세상 마칠 때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예, 여기 있습니다.”
교구 총대리 이영배 신부의 호명에 서품 후보자들이 한명씩 제대 앞으로 나와 섰다. 후보자들은 주님의 양들을 돌보고 말씀의 봉사직을 수행하겠다고 서약했다. 미사성제와 화해의 성사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충실히 거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류구원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다짐했다. 교구장 주교와 후임자에게 존경과 순명을 서약한다고 답했다.
서품 후보자들이 가장 비천한 자로 주님께 봉사할 것을 드러내며 땅에 엎드렸고 성인호칭기도가 시작됐다.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맡긴 서품 후보자들의 모습을 보며, 사제단과 신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제직에 올리고자 뽑으신 부제들에게 천상선물을 가득히 내려주시기를 기도했다. 이어 이용훈 주교는 최덕기 주교, 사제단과 함께 서품 후보자들을 안수하고 서품기도를 바쳤으며, 제사장의 품위인 제의를 입혀줬다.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할 손에 크리스마 성유를 바르고 빵과 포도주가 담긴 성반과 성작도 수여했다. 교구 사제단의 일원이 된 새 사제 20명에게 다가간 교구장 이용훈 주교와 최덕기 주교는 일일이 포옹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눴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미사 영성체예식 후 “오늘은 교구에 큰 축복이 내린 날”이라며 “앞으로 새 신부님들이 주교를 도와 교회를 위해 하느님 나라를 위해 충실히 봉사할 수 있도록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달라”고 청했다. 이 주교는 사제단 첫 줄에 앉은 새 사제 출신 본당 사제들과 성소국장 김기창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방상만 신부를 비롯한 신학교 교수 신부, 새 사제들의 부모님들을 차례차례 소개하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행사가 잘 치러질 수 있도록 수고한 여성연합회, 기사 사도회, ME, 레지아, 전례 꽃꽂이 봉사자와 성가대 그리고 서품식에 참석해 기도해 주신 모든 신자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 이용훈 주교 사제서품식 강론
가슴 벅찬 사제서품식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는 새 사제들이 모두 충실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고백하고 따르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는 사제, 만민을 진정으로 아끼는 사제, 기도의 스승 역할을 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정신이 가득한 사제, 소유물의 나눔에 있어 모범이 되고 세상과 교회를 위해 전심전력으로 몸 바치는 성인 사제들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새 사제들의 탄생으로 수원교구는 이전보다 더욱 활기차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교회의 사명인 선교활동과 사회복음화 사업,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등을 알차게 실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의 사제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되고 유일한 제관이시기에 어느 누구도 스스로 이 사제직에 오르거나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올라 참여하고 있으며 이 사제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유효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제란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봉사하고 다른 이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믿고 전하지 않는 사제란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는 사제가 전 생애를 걸고 수행해야 할 사제 직무의 모든 것이요 전부입니다.
다음으로 사제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고 이를 전달하며 성사생활의 관리인이 됩니다. 사제는 성체, 고해, 병자, 세례, 혼인성사 등을 공적으로 집전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약한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하고 성체를 이루는 권한은 사람의 언어로는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제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서 영생의 진리를 선포하며 참신앙을 옹호하고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주님의 자비와 너그러움을 보여주며 세상에 희망과 평화, 사랑과 나눔을 싣는 사람입니다.
현대사회의 부정적이고 왜곡된 사상과 풍조는 참진리를 외면하고 위험한 행태를 낳고 있습니다. 사제는 늘 깨어 온 백성들을 안전하게 하느님께 인도하는 사명의 고삐를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제들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고 하느님과 교회로부터 부르심 받은 삶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자기 뜻과 의지, 기호, 이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뜻과 의향 의지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제들에게 있어 모든 사고와 행위의 기준과 규범 척도는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가신 길을 흠 없이 따름으로써 행복과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인간으로 오시어 가난한 처지에서 가장 낮은 자로 사시며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수난과 고통의 십자가 상 죽음의 제사를 통해 세상과 인류를 위한 구원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류는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과 영광의 부활을 통한 은혜를 기반으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순례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상의 순례 길 한복판에 바로 사제가 의연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제는 자신만을 위해서 불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사제는 부르심에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와 태도를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들은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성실히 수행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주교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주교의 기도에 따라 교우들과 예비신자들, 한 가정, 한 공동체를 운명적인 신앙공동체로 만들고 그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 서품되는 사제들이 예외 없이 주님께 대한 항구한 믿음을 간직하고 고백하며 사람들에게 성교회의 성사와 축복의 은총을 분배하고 지상생활을 마치는 그날까지 교회가 가르치고 일러주는 정신에 따라 기쁘고 보람 있게 사는 그런 사제,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사제들이 되도록 함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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