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를 칠하는 손놀림이 하루하루 빨라지고 라오스 어린이들이 꿈을 펼칠 학교도 외양을 갖춰간다.
목이 뻐근해 온다. 오전 내내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며 페인트를 칠한 때문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발, 다리, 목 결리지 않는 곳이 없다. 덥고 습한 날씨는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얼굴을 타고 내려 온 땀이 입 속으로 들어간다.
“아이고, 짜다 짜~!”
모자가 불편해 벗어던지자, 이번엔 페인트가 머리 위로 뚝 떨어진다.
“이크, 머리카락 다 잘라내야겠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 일에 매달리다 보면 배꼽시계가 점심식사 시간을 알린다. “식사 준비 됐어요!”라는 소리가 반갑다. 식사는 매일 라오스 현지 음식으로 준비됐다. 고된 노동 뒤의 먹을거리라서 맛이 꿀맛이다. 하지만 왠지 엄마표 김치찌개가 떠오른다.
# 함께하니 우정도 새록새록 - 교류 프로그램
점심식사를 마치고 자리가 정리된 후,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 우리가 준비해온 것들을 풀어놓을 시간이다.
‘라오스 친구들이 좋아해줄까?’ 첫날 프로그램은 ‘보디페인팅’.
1조, 2조, 3조(라오스에선 라오스어로 각각 꿈능 꿈썽 꿈쌈이라고 불렀다) 각 조마다 책상 위에 하얀 도화지를 한 장씩 펼치고 색색의 물감을 받았다. 주제를 하나씩 정해 손바닥으로 물감을 톡톡 찍어 종이에다 표현해본다. 아이들의 손바닥이 알록달록 과일이 됐다가 꽃도 됐다가 우산도 그려졌다.
처음에는 조심조심 모양이 완성되나 싶더니, 한 아이가 손을 슬쩍 들어 다른 친구의 얼굴에 손도장을 찍었다. 순간이었다. 조용하던 교실이 온통 아수라장이다. 서로 달려들어 얼굴, 팔, 다리 할 것 없이 손자국을 남긴다. “나 잡아봐라~” 하나둘씩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미 얼굴은 누가 누군지도 알아보기 힘든 상태가 됐다.
한참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수돗가에 모여 온몸을 덮은 물감을 씻어낸다. “야 네 얼굴 좀 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음꽃이 피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한바탕 뛰고 나니 오후 작업 호흡이 더 잘 맞는다.
둘째 날도 페인트칠과 함께 ‘쿠키장식 아이싱’을 해보기로 했다. ‘아이싱’이란 슈가파우더, 달걀, 식용색소 등을 섞어 쿠키나 케이크에 장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완성된 아이싱을 짤 주머니에 담고 조심조심 모양을 만들어 나간다. 예쁘게 만들어 어느 조가 잘했나 콘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자꾸만 생각했던 것과 달라진다. “에라, 모르겠다.” 망가진 쿠키는 입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옆에 앉은 버디에게도 한입, 쿠키를 건넨다. 달달한 쿠키와 함께 우정도 전해진다.
마지막 날 했던 ‘매직 풍선’은 동네 꼬마 녀석들까지 문 틈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아우성이다. 다 나눠주고 싶지만 아무리 빨리 만들어도 감당해 낼 수가 없다. 이 간단한 놀잇감 하나가 무엇이기에…. 키 크고 힘센 아이들만 덥석덥석 집어가는 것이 아쉬워 키 작은 아이에게 슬쩍 하나 챙겨준다. 아이는 내게 고맙다며 씽긋 웃어줬다.
셋째 날에는 폰암초등학교 학생들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마을 아이들도 함께했다.
아이들과 선생님,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사물놀이, 난타, 태권무, 리코더 합주 등 하나둘씩 선보일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쳐다본다.
공연에 이어 미니 올림픽을 열었다. 2인3각, 꼬리잡기 등 게임이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소리가 어우러져 열기가 뜨겁다. 통역해주는 국제협력단 단원의 목소리마저 묻힐 지경이다. 그 열기가 하늘에 닿았는지 갑자기 또 장대같은 비가 쏟아진다.
드디어 시상 시간, 아이들의 눈이 한곳에 집중됐다. 드디어 1위가 발표됐다. 부상은 우리가 준비해간 학용품. 저마다 손에 학용품을 한가득 쥐고 자기 것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마음도 뿌듯하다.
‘나눔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표정이 밝다. 라오스의 표정도 맑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라오스 어린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마음속에 담아간다.
‘사랑해요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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