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가난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사제품을 받을 때 걸치고 있던 옷 한 벌 말고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다.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고, 필요한 것들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빈손으로 사제 생활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저는 이 교회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 걸치고 있던 이 옷이 전부였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설교」 355,2)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제가 된 다음 가난의 정신으로 함께 살아갈 형제들을 모았으며, 성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공동 소유의 삶을 살았다. 우리가 하느님을 더불어 모시듯이 재물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동안 변하지 않는 신념이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아우구스티누스 일생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고 싶어 했다. 그는 “저는 가난한 민중 출신이며 가난한 인간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라고 기쁘게 고백한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먹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민중을 향한 뜨거운 연대이며, 몸소 가난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의 삶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금욕주의자처럼 처신하거나 극단적 형태의 가난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제나 중용의 덕을 지니고 있었다. 의복에 있어서도 남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는 단호함을 지녔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허약한 사람들이나 손님들에게는 봄바람과 같은 부드러움과 관용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가난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요청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이었으며,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시어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인 가난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와 과부와 떠돌이들의 아버지였다. 그는 병자들을 즐겨 방문했고, 지치고 상처 입은 백성들의 하소연을 듣고 어루만져 주었다. 이와 관련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스스로 가난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 사제의 의무를 늘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교회의 빠듯한 재산마저도 기꺼이 나누었고, 심지어 성물(聖物)마저 쪼개고 녹여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동료 사제들을 ‘가난의 동지들’이라고 즐겨 불렀다. 부유하게 지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하는 그런 사목자가 아니라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고 싶어 했으며, 정말 가난하게 살다 갔다. 그분은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남겨줄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가톨릭대 출판부의 「신학과 사상」 44호에 실린 최원오 신부의 ‘교부들의 사제영성’을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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