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
오전 내내 비가 내려 작업이 취소됐다. 다행(?)이었다. 8일 동안의 작업으로 몸이 적응할 법도 한데 한국 단원들의 몸은 성한 데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오히려 제가 행복한걸요.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느끼게 됐네요.”
저녁에는 필리핀 돈보스코 학생들과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그동안 작업만 하느라 돈보스코 학생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지 않았었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같은 또래니 금세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화, 언어는 다르지만 뭔가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요?”
조장 권무진(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씨가 아침 조회를 하고 있는 돈보스코 트네이닝센터 학생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필리핀 친구들에게 소중한 선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단원들은 쉬지 못했다. 필리핀 학생들의 웃는 모습을 생각하니 쉴 수가 없었다. 단원들은 오히려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단원끼리도 어색해하고 이곳 필리핀 아이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녀석들이었는데. 어느새 마음이 열렸네요.” 단원들을 바라보며 박경석 수사(살레시오회)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저녁 7시 산호세 주교좌성당의 공연장. 돈보스코 트레이닝센터 학생들과의 문화 축제가 열렸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돈보스코 트레이닝센터 학생 100여 명이 단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 무대는 공립 루잔대학교 학생들의 필리핀 전통춤. 전통춤을 추는 모습에 신기한 듯 단원들이 감탄사를 자아냈다. 주영란(29·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씨는 “이곳에 와서 몸이 피곤하고 지쳤지만 공연을 보니 피로가 저절로 풀린다”며 단원들과 함께 즐거워했다.
다음은 필리핀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한국 단원들의 차례. 필리핀 학생들이 기대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외국인 학생들 앞에서였는지 단원들의 표정은 긴장되고 수줍은 표정이었다.
무대에 올라간 단원들은 한글, 한옥 등의 한국 전통을 소개하고, 노래와 댄스 등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필리핀 대학생들의 전통 춤 공연 만큼의 전문적 공연은 아니었지만 필리핀 학생들은 환호했다. 용접기술을 배우고 있는 블란치오(17)군은 “우리를 위해 그동안 학교 곳곳에서 연습하는 단원들의 모습을 봐왔다”며 “함께하는 것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학생들 또한 그동안 단원들에게 선물할 노래를 연습하며 오늘을 기다려왔다. 필리핀 학생들은 단원들에게 노래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한국 단원들도 웃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필리핀 학생들의 사랑의 마음이 노래로 전해지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한국 단원들과 필리핀 학생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은 이미 통하는 듯 보였다.
한의현(안양 관양고1)군은 필리핀 학생들을 보며 이곳에서 배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살라마트.” 필리핀 학생들도 단원들에게 배운 감사의 표현을 한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필리핀의 마지막 밤은 저물어갔다.
▨ 이별
8월 8일 아침. 한국 단원들이 떠난다는 소식에 현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울지마 왜 울어. 다시 꼭 올게. 아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의 울음을 말리던 단원들이 오히려 운다. 가난하지만 항상 밝게 웃으며 단원들을 맞았던 필리핀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 2주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 속은 이미 아이들로 가득 찬 단원들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좀처럼 참을 수 없었다. 박용경(21·충남대)씨는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 지 아이들과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헤어지니 속상하네요.” 강혜은(제주 신성여고)양 또한 눈물을 글썽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필리핀 아이들은 한국 단원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줬다. 가진 것이 없어도 줄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가르쳐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가난했다. 초등학교를 가지 못해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친구들과 놀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얼굴만큼은 맑고 밝았다.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단원들의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김수정(30·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씨는 한 아이를 얼싸안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박소현(20·수험생)양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큰 사랑의 마음을 이곳에서 깨닫게 됐다”며 “소중한 체험을 하게 해 준 이곳 현지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남자 단원들 또한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 눈물을 참으며 아이들과 장난치고 함께 노는 것으로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랬다. 필리핀 사람을 닮았다고 해서 ‘필리피노’라는 별명을 얻은 장성도(17)군은 “해맑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한국에 돌아가서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헤어질 시간. 꼭 붙들었던 손을 놔야 할 시간이다. 단원들 한 명씩 버스에 올라타야 했지만 쉽게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곁에서 단원들을 바라보는 해맑은 현지 아이들의 눈길에 발을 쉽게 뗄 수 없었다. 아쉬움에 끝까지 손을 놓지 못했던 아이들이 한 명씩 버스에 올라탔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안녕… 이제 가야 될 것 같아.”
필리핀 아이들은 버스에 오른 단원들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버스 밖에서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얘들아 정말 고마워… 소중한 추억 안고 가게 해줘서. 잊지 못할 거야. 안녕.”
※ 후원 758401-04-006021 국민은행 (예금주 (재)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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