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의 죽산,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하지만 기록상으로 이름을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이는 3명이다. 박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부부와 한덕운 토마스가 그들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을 공경하며 그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고, 마지막까지 하느님을 증거하며 가장 소중한 목숨을 바쳤다. 현재 이곳에는 죽산성지(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죽림리703-6)가 위치하고 있어 당시 비명에 간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 경기도 죽산-박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부부
경기도 죽산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은 박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부부다.
1835년 태어난 박 프란치스코는 장성한 뒤 오 마르가리타와 혼인해 충청도 청주에서 살았으나 1860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안전한 곳을 찾아 진천 절골(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했다.
하지만 1868년 9월, 더욱 거세진 박해의 바람을 타고 포졸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잡기 위해 절골로 들이닥쳤다. 부부는 산으로 피신하던 도중 서로 이별하게 됐고, 어린 자식을 업고 숨어있던 아내 마르가리타가 포졸에게 체포돼 많은 매를 맞았다.
남편 박 프란치스코는 도망쳤으나 가족들의 사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동정을 살피러 내려온 그는 마을의 비신자 집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그 비신자는 프란치스코를 안심시킨 뒤 포졸에게 밀고해버렸다. 부부는 이렇게 체포돼 죽산으로 끌려가 함께 옥중 생활을 한다.
‘병인치명사적’의 기록에 따르면 프란치스코는 동생 필립보와 맏아들 안토니오에게 ‘어린 조카들을 잘 보살피면서 진정으로 천주님을 공경하고 천주님께서 안배하시는 대로 순명하여 나의 뒤를 따라오도록 하여라’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편지는 집안에 남아있던 성물과 함께 박해 도중 소실돼 현재로서는 아쉽게도 찾아볼 수 없다. 부부는 어떠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신앙을 지키며 옥중생활을 하다 1868년 9월 죽산에서 함께 순교했다.
▧ 광주 남한산성의 순교자
수원교구에서 순교한 순교자 중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한덕운(토마스)이다.
충청도 홍주 출신인 그는 1790년 윤지충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으며 이듬해 윤지충의 순교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교리를 실천해나갔다. 그는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사를 받기 위해 만나려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룰 수 없었다.
1800년, 그는 좀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경기도 광주 땅에 속한 의일리(현 경기도 의왕시 학의동)로 이주해 오직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만 열중한다. 기도와 독서를 부지런히 했으며, 특히 신자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고 권면하기를 좋아했는데 그의 말은 언제나 굳건하고 날카로웠다고 한다.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한덕운은 교회와 교우들의 소식이 궁금해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옹기장사꾼으로 변장한 뒤 한양으로 올라간다.
한양으로 가던 도중 청파동에 이르렀을 때 그는 끔찍한 죽음들과, 거적으로 덮여진 홍낙민(바오로)의 시신을 보게 됐다. 그는 그 시신에 애도를 표하고 그의 아들 홍재영에게 함께 순교하지 못한 것을 엄하게 질책했다. 그는 또 서소문 밖에서 최필제(베드로)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 주기도 했다.
사실 박해 상황에서 신자들의 시신을 돌봐 준다는 것은 자신이 신자임을 드러내는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한덕운은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져 포졸들에게 체포돼 포도청으로 끌려가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1802년, 동료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고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으로 옮겨져 참수당한 그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 비장한 최후 진술을 남겼다.
“저는 천주교의 교리를 깊이 믿으면서 이를 가장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비록 사형을 받게 됐지만, 어찌 마음을 바꿀 생각이 있겠습니까?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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