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다…쉬고 싶다….’
쉬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을 안고, 휴가철을 맞아 우리들은 산으로 바다로 떠났다. 그러나 휴식의 기쁨은 잠시,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와 여독으로 우리들의 얼굴은 어느새 피로감으로 일그러진다. 언제 휴가를 다녀왔냐는 듯 또 다른 휴식을 꿈꾼다. 쉬어도 쉬어도 끝이 없는 ‘쉼’에 대한 갈증! 9월 14일, 새집 봉헌식을 앞두고 있는 겟세마니 피정의 집 배광하 신부를 만나 ‘진정한 쉼’에 대해 들었다.
유독 의자가 눈에 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물소리가 들리는 정자 아래, 사람이 오가는 길목 길목 어김없이 의자가 놓여 있다. 포도나무 아래에도 배나무 아래에도 마찬가지다. 빗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성가가 울려 퍼진다.
평화의 종이 울리고, 갈릴래아 기도터에는 새가 날아다니고, 거미줄 위에는 빗방울이 맺혔다. 모든 것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평일 오후 2시. 느린 걸음의 배광하 신부가 포도나무 옆 정자 아래에 앉아 입을 열었다.
“현 시대는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너무 바쁘게 흘러가다보니, 내가 누구인가를 잊어버리게 되고, 삶의 의미 또한 잊어버리게 됩니다. 컴퓨터, TV, 휴대폰, 자동차… 현대 문명의 이기의 소음입니다. 또 약속은 왜 그리 많은지요? 무슨 모임, 무슨 단체 끊임없는 약속 속에 정작 자기 자신은 잊게 되는 것이지요. 많은 이들이 휴식을 원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문명의 이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누리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배 신부는 피정의 집 공터 한 쪽에 놓인 예수성심상에 새겨진 성경구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겟세마니 피정의 집을 만드신 조선희 신부(Philip Crosbie?호주 멜버른 출신)님이 가장 좋아한 말씀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2004년 겟세마니 피정의 집으로 부임해 5년 만에 새집을 지어 완공한 배 신부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영혼의 쉼터를 만드는 것이 소명이라 느꼈다 했다.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영혼의 쉼에 필요한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영적으로 메말라 있는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누구나 부담없이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새로 지은 겟세마니 피정의 집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명상이 되는 곳이었다. 삼면이 소양호로 둘러싸여 있고 고개만 들어도 지천으로 펼쳐져 있는 산과 나무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배 신부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배, 포도, 옥수수, 고추, 호박밭에는 땀과 정성으로 영근 열매가 가득하다.
눈길을 끄는 곳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묵상할 수 있는 15처 길과 소양 호숫가에 만든 ‘갈릴래아 기도터’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묵상하며 오솔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배 한척이 묶여져 있는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배 신부 역시 ‘진정한 쉼’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만났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저는 사고뭉치였어요. 학교를 안 가고 쌈박질하기 일쑤였지요. 그러나 당시 양구본당 주임이시던 박영근 신부님의 도움으로 피정을 받게 됐어요. 어둠 속에 촛불을 켜 놓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있었지요. 그때 주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내 평생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겠다고요. 그것이 부르심이었습니다. 진정한 쉼이요? 그것은 세상의 소음을 피해 나란 존재가 누구고, 나를 있게 한 하느님이 누구인지 침묵 가운데 묵상해보는 것입니다. 고요한 가운데 나 자신을 나 자신 그대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 길, 배 신부의 말을 마음 속에 새기며 기자도 기도를 바쳤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고요한 발걸음에 자기 존재의 무게를 느끼며 하느님을 찾았다. 진정한 쉼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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