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사 가다가, 접촉 사고로 수도원 새 차를 긁었습니다. 미사 시간 늦을까 급한 마음으로 운전하다 사고가 났던 것입니다. 보험 처리로 수도원에 상황 보고를 한 후 돌아오는데 형제들은 위로는 커녕 그 차의 사고 난 위치를 찾느라 아우성이었습니다.
휴! 그 날 저녁, 동창 신부 모임이 있었는데 풀이 죽은 내 모습을 보자, 교구 동창들이 계속 추궁하는 바람에 오전의 일들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동창들은 ‘놀라지 않았느냐, 다친 곳 없느냐’ 하면서 보험 처리 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20년 훨씬 넘게 함께 살았던 형제들로부터는 그 어떤 위로도 못 받았는데, 오히려 가끔 보는 동창 신부님들의 위로에, 순간 그 형제들 얼굴이 겹쳐지면서, 왠지 수도 생활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서운한 감정 하나가 수도 생활의 가치를 갉아 먹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날, 형제들 얼굴도 보기 싫어 고개 숙이며 밥을 먹는데, 형제들이 겉으로는 자기네들끼리 대화하지만 속으로는 나를 웃기려고, “수탉의 아내를 한마디로 하면?”, “닥쳐(닭처)!”, “어제 외국인이 대학로에서 간판을 보고 기절했는데, 그 간판 제목이 ‘할머니뼈 해장국’이었대!” 안 웃으려고 했는데, 왜 그리 웃음이 나오는지. 그렇게 한바탕 웃었더니 어제의 서운한 감정이 한방에 날아 가더라구요. 휴!
머무름이라!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오다가 혹 배우자나 공동체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자신의 자리가 왠지 지겹고 불편해지곤 합니다. 그렇게 삶이 지겨워질 때의 마음을 살펴보면 평소 타인에 대한 기대치나 욕심, 혹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클 때가 대부분입니다. 형제들의 서운한 행동 하나에 수도 생활 전부가 지겨워졌던 내 모습, 배우자나 가족으로부터 서운한 말을 들어 결국은 결혼에 대한 환멸이 밀어 닥치는분, 뭐, 그게 그거인 듯 합니다. 부끄럽게시리!
문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위대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단지 “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니, 그 가지에 잘 머물러 있기만 하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머물러 있기만 하라! 아직까지 수도원에 잘 머물러 준 내 자신을 보면서, 함께 있어 준 우리 형제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내가 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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