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국 여인이 전화를 했다. 성모병원이라면서 우즈베키스탄 여인을 어제 밤에 응급실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마야라고 했고 임신 중이었는데 유산을 했다. 자신은 마야가 전에 잠깐 일했던 공장의 사장 부인인데, 그가 연락을 하여 도와달라고 해서 함께 왔다는 것이다.
이미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병원에 있는 사회사업팀에 연결해 주었다. 마야의 남편과 면담을 통해서 본인들이 부담할 수 있는 병원비의 금액을 확인하고 나머지 부분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 남편이 사회사업팀에 전화를 하여 본인이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으니 그냥 내보내 달라고 하였단다.
한국에서 지낸지 6년이나 되었고 친구들도 있을 텐데 40여만 원의 돈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아예 그런 의지가 없는 것인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그들이 지불할 수 없다면 상담소가 책임질 것이라고 말하고 일단 퇴원시키기로 하였다.
3일 뒤에 퇴원허가가 났고 마야는 아무런 말도 없이 병원비도 내지 않고 퇴원하였다.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날 오후에 전화를 하여 며칠 뒤에 병원비를 내겠다는 전화를 남겼다고 했다. 그나마 그것이 희망적인 면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갚아야 하는 것이니 일단은 마야의 병원비를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나라 사람들은 믿으면 안 된다는 소리도 들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편견이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진실로 들렸다.
며칠 뒤, 마야의 남편이 병원비를 보내왔다고 연락이 왔다. 순간, 돈보다도 그동안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나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 더 기뻤다.
다음 날 주일 강론을 준비하면서 토마 사도의 신앙고백을 마주하게 되었고 마야에 대해 가졌던 내 마음을 보게 되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내 모습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난한 이들은 항상 우리에게 도전을 한다. 어쩌면 마야도 그런 도전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증거를 요구하면서 믿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에 도전을 거는 것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고 계속 두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나는 아쉬워한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살면서 알아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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