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순교자와 함께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는 최양업 신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해석들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이같은 해석들은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가 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마련한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서품 160주년 및 사제의 해’를 맞은 학술포럼에서 비롯됐다.
‘땀과 꿈의 사제 최양업’이라는 주제로 이뤄진 이번 포럼은 ▲기조강연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발표1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에 나타난 선조들의 신앙과 영성’(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총무 류한영 신부) ▲발표2 ‘언어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천주가사’(서울대 언어학과 조원형 박사) ▲발표3 ‘한국 가톨릭 교회음악과 최양업 신부’(서울대 음대 양인용 박사) 등으로 진행됐다. 한홍순 회장은 “이번 포럼을 통해 최양업 신부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가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술 포럼 내용을 요약한다.
▧ 기조강연-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 (장봉훈 주교·청주교구장)
올해는 최양업 신부의 사제수품 160주년이 되는 해이자 최 신부가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로서는 최초로, 교회법에 따른 시복재판을 마치고 시복문건이 시성성에 제출된 ‘역사적인 해’이기도하다. 또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성 비안네 사제 선종 150주년을 맞이해 선포하신 사제의 해다.
최양업 신부의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의 생애에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였다. 그분 생애의 목표는 ‘순교’였다.
최 신부의 이번 시복시성은 그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시복시성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삶과 신앙을 본받고 따름으로써 구원의 길을 가기 위해서다.
▧ 발표Ⅰ-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에 나타난 선조들의 신앙과 영성’ (류한영 신부·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총무)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는 ‘어화 벗님네야’로 시작해 ‘대부모를 보사이다’로 끝난다. 844행의 기나긴 천주가사는 우리 선조들의 신앙의 맥이 흐르고 있는 귀중한 시편이다.
‘본향은 어디’- “어화 벗님네야/우리본향 찾아가세/동서남북 사해팔방/어느곳이 본향인고/복지로 가자하니/모세성인 못들었고/지당으로 가자하니/아담원조 내쳤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그리워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않는다. 구약의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해 40년간 광야를 헤매는 여정은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을 상징한 것이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에 들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선종한 모세는 구세사 안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 시킨다. 또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계명 대신 지상의 탐스러운 열매를 추구하는데 그들은 낙원에 들지 못하고 지상에서 방황하고 고통의 바다에 빠지게 돼있다.
‘사향가’의 시작은 인간의 참된 고향은 천당임을 밝힌다. 하느님을 표현하는데 있어 ‘대부모’라는 말을 자주 쓴다. 기나긴 여정의 결론은 간단하다. ‘천당 길을 바로 찾아 대부모를 만나보자’는 것이다.
▧ 발표Ⅱ- ‘언어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천주가사’ (조원형 박사·서울대 언어학과)
천주가사의 ‘사향가’는 서양음악의 대표적인 악곡 형식 중 하나인 소나타 형식과 동일한 텍스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제시부에서 ‘세속과 고향(천당)의 대비’와 ‘고향 가는 법’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연달아 제시하고 전개부에서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이 두 주제를 상세히 풀어 논한 뒤 재현부에서 다시 원래의 주제를 설명하는 방식은 소나타 형식과 일치한다.
소나타 형식은 주제를 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서양음악에서 고전파 시대 이래로 널리 활용돼 왔는데, 서양음악이 전혀 보급돼 있지 않던 19세기 조선에서도 그와 같은 텍스트 구조를 고안해 천주교 교리를 조리있게 설파했다는 것은 ‘사향가’ 저자의 신앙 지식과 글쓰기 실력이 수준급이었다는 점을 증명해 준다.
다만 ‘사향가’는 저자가 누구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성이 의심되는 자료만을 가지고 ‘사향가’의 저자가 최양업 신부라고 단정하는 일부의 견해는 부당하다. 최양업 신부가 ‘사향가’를 비롯한 천주가사를 사목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개연성은 있다.
150여 년 전 지어진 ‘사향가’가 탁월한 텍스트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 천주교 미디어를 다루는 이들에게도 교훈을 준다. 천주교 미디어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교리를 전파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다양한 전교 전략을 짜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 발표Ⅲ- ‘한국 가톨릭 교회음악과 최양업 신부’ (양인용 박사·서울대음대)
최 신부의 저작이라고 주장되는 작품으로는 논의에 따라 많게는 사향가를 비롯한 22편, 적게는 3편, 혹은 사향가 1편이며 심지어 한 편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
“나의 조선 소년들의 목소리가 매우 쉰 목소리고, 완전히 음정이 맞지 않는 목소리라는 말을 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교회 노래와 성가들을 가르쳐 그것을 좀 고쳐볼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 4~5피아스트르 값의 손풍금이 있으면 아주 좋겠습니다.”
이것은 1838년 마카오 소재 파리외방전교회 칼르리 신부가 파리 본부의 신학교 트송 신부에 보낸 서한으로 ‘나의 조선 소년들’은 최양업과 김대건, 최방제를 가리킨다. 이는 신학생들이 서양 음악, 전통적 교회 성가들을 접하고 배웠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최양업의 서한을 보면, ‘여러 개의 건반이 있는 약 30프랑짜리 되는 것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쓴 구절도 있다. ‘사본문답을 모두 익혀 영세를 하는 신자가 소수에 불과하고 심지어 죽을 때까지 교리 공부를 해도 사본문답을 다 외우지 못하는 신자들이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이 편지는 공교롭게도 그가 한국에 악기를 보내줄 것을 요청한 첫 번째 편지였다.
이러한 가능성들은 최 신부가 서구 유럽의 음악, 가톨릭 전통의 교회음악을 ‘신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조선인 중 하나였다는 것, 한국교회 안에서 음악의 중요성과 악기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한 선각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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