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황해도에서 러시아로 탈북한 박민철(가명·62·남)씨. 박 씨는 한국에 살며 건축, 배달, 용접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남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에 늘 웃으며 적극적으로 일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탈북자’라는 꼬리표뿐이었다. 박씨는 “이젠 한적한 농촌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중국으로 탈북한 김경아(가명·48·여)씨도 한국에서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그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국정부에서는 정착금으로 600여 만 원의 지원과 단기간의 직업교육훈련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현재 포항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행복할거라 확신했는데 한국인들과의 문화, 경제, 가치관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다”며 “이방인으로밖에 머물 수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대교구가 이런 새터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9월 12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농촌 이주 및 생산협동 조합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하 농촌 이주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오는 12월까지 진행되는 이번 농촌 이주 프로그램은 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새터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이미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가톨릭농민회와 연계해 새터민들의 귀농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프로그램에서 새터민들은 지난 2000년 전남 구례로 귀농해 현재 가톨릭농민회 광주대교구연합회 김영길 상임이사의 강의에 참여해 귀농·귀촌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들었다.
김상진(가명)씨는 “귀농하는데 실제 필요한 것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귀농하는 새터민들을 위해 한국정부의 지원은 없냐”고 물었다. 이수영(가명)씨 또한 “농촌 사람들은 도시사람들에 비해 새터민들에 대한 편견은 적은 편인가”라고 궁금해 했다.
김 이사는 새터민들에게 “무엇보다 자신이 왜 귀농하려고 하는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지 농촌에 가면 편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귀농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이사는 “사전에 철저한 조사와 함께 지역에 멘토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전국의 가톨릭농민회 회원들과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에서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시간 동안 김 이사의 귀농에 대한 조언을 통해 새터민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힘들고 지친 한국의 삶이었지만 10여 년 동안 농촌에서 생활한 김 이사의 강의는 새터민들에게 귀농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박민철씨는 “하느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새터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천주교의 모습에 진정성을 느꼈다”며 “12월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성실히 임해 귀농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경아씨는 “오늘 강의를 통해 귀농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며 “농촌 사람들에게 신뢰만 줄 수 있다면 잘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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