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각재(不刻齋)’
조각하지 않음을 공경한다는 이 글귀는 한국 현대추상조각의 선구자 우성(又誠) 김종영(프란치스코·1915~1982)이 1981년 서울 삼선교에 위치한 자택에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직접 쓴 현판이다.
조각가로 이름을 날린 우성은 사실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어린 시절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서예를 시작한 그는 조각 작품 못지않게 높은 품격과 예술성을 지닌 서예작품들을 남겼지만, 한 번도 세상에 내놓은 적은 없었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관장 최종태 요셉)은 10월 8일까지 ‘각도인서(刻道人書) : 조각가 김종영의 서화’전을 연다. 우성의 서예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전시에서는 800여점의 작품 중에서 묵화 20여 점을 포함한 4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우성의 작품 중에는 노자와 장자의 글을 인용한 작품이 상당수 있다. 그는 도가사상이 담긴 글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인생철학과 예술에 대한 사유도 논하곤 했다. 특히 노자사상은 우성이 가지고 있던 예술론의 철학적 근간이 되기도 했다.
동양 예술이 지고의 경지로 여기는 무위(無爲)로부터 조각에서 불각(不刻)의 이념으로 개척한 것 또한 우성의 예술정신에서 비롯된다. 이후 자신의 아틀리에에는 ‘불각재’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화단에서는 ‘불각도인’이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칸을 미리 설정하지 않고 한 번에 완벽하게 맞춰진 행과 열의 구조는 우성의 작품을 관람하는 또 다른 묘미다. 여백과 서체 간의 조화, 획의 굵기나 부피감 등이 만들어 내는 필체와 형상은 우성의 서예가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한다.
우성은 특정한 필체에 얽매이지 않았다. 주먹으로 붓을 잡는 방식의 악필을 비롯 안진경체와 구양순체 등 필체를 넘나들며 자유롭고 다양한 글씨를 선보였다. 이는 하나의 스타일에 머무르는 것을 진리를 가리는 흠이나 장식으로 여겼던 우성의 예술 인식과 맞닿아 있다.
김정락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특징이 없는 것이 선생의 서체가 가진 특징”이라며 “선생의 서체에는 전형적인 성격을 넘어 자신의 독창적인 조형 의지가 가미되어 있으며, 간결함과 담백함 그리고 최소한의 것으로 응축하는 무위적 정신을 담은 서체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미술관 전시와 더불어 서예 작품 60여 점을 수록한 ‘우성 김종영의 서예:서법묵예(書法墨藝)’(열화당)도 출간했다.
※문의 02-3217-6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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