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시편’을 읽고 묵상하고 왔습니다. 나는 성경에서 시편이 참 좋습니다. 시편 저자는 기도를 정말 생생하게 살아있게 합니다. 그 중에 ‘원수 감정’에 대한 생생한 표현은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훌륭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자주 원수를 만납니다. 그냥 생각만 해도 밉고, 얼굴 보기만 해도 싫고, 말을 걸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그런 원수. 겸손하게 살려는데 한마디 툭, 무시하는 말을 내뱉는 원수,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생각하는데 ‘정신 좀 차리고, 잘 좀 살아’ 이렇게 말하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심한 배신을 당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했다가 오히려 큰 화를 입게 되었거나, 또는 본의 아니게 질투를 받을 때, 자연히 원수들이 마구마구 생겨납니다. 그럴 때 ‘참아야지, 참고 살아야지!’ 하면서 사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인내’의 감정과 ‘무조건 내가 참아야지’하는 그런 미성숙한 감정은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만나는 원수들마다, 대놓고 욕하기도 뭐 한 것이 우리 신앙인입니다.
나는 어느 날 시편을 골몰히 읽다보니, 시편 저자도 생생하게 원수에 대한 감정을 기도로 다루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거기에 감정을 이입하다보니, 시편을 통해 기도도 하게 되고, 덤으로 내 안에 있는 ‘원수 감정’을 영적으로 털어낼 수 있어서 후련하고 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기도가 생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인이기에 자신 안에 있는 온갖 종류의 감정을 눌러 참기만 한다면, 그건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사실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르기만 하면 자신 안에 있는 생각, 의식, 사고까지도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럴 때 ‘시편’과 함께, ‘시편’ 저자처럼 생생하게 기도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기도하는 그 순간은 하느님 앞에서 가장 거룩한 시간일는지 몰라도, 기도 내용이야 하느님 그 분께서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내 안에 있는 솔직한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마음속으로, 하느님의 영적인 음성도 들릴 때가 있을 겁니다.
‘어휴, 네가 그렇게나 많이 힘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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