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동사(同日同死)하자 했더니, 이는 못해 동지동사(同地同死)합시다.”
1839년 8월 19일(음력) 남이관 성인(세바스티아노, 1780~1839)은 서소문 형장으로 끌려가던 중 한 군사에게 옥중에 있는 아내에게 전해달라며 유언처럼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성인의 아내 조증이(바르바라, 1782~1839)는 남편의 말처럼 3개월 후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다. 한날한시에 죽자던 약속은 지키지 못했으나 부부는 신앙을 위해 몸 바치며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면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1780년 서울의 양반 교우가정에서 태어난 남이관 성인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와 결혼했다. 1801년 신유박해로 부친이 체포되고 처가로 피신했지만 곧 체포돼 경상도 단성으로 유배된다.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 부친은 그곳에서 사망한다.
그로부터 30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성인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성인은 1832년 풀려나 처가인 경기도 이천에서 살다가 서울로 온다. 서울에서 성인은 처가의 친척인 정하상을 도와 성직자 영입운동에 참여했고 1833년 의주에서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맞아 들여 그에게 견진성사를 받은 후 회장의 직무를 맡아 교회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로 이천으로 피신했으나 9월에 밀고자에 의해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정하상, 유진길 등과 함께 심문을 받은 성인은 형조로 이송돼 사형을 선고받고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순교했다.
성인의 부인 조증이 성인은 경기도 이천 양반 교우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친정아버지가 순교하고 남편도 유배되자 친정인 이천에 내려가 10여년을 고생하며 살았다. 그 후 30세경 다시 서울에 온 성인은 정하상을 도와 선교사 영입에 필요한 자금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1832년 남편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남편과 함께 이듬해 입국한 유방제 신부를 보필하고 공소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편을 친정으로 피신시키고 어린 딸과 함께 집을 지키고 있다가 1839년 7월 체포되었다. 성인은 포청과 형조에서 남편 남이관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관헌들에게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함구하고 신앙을 지켜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순교했다.
성인은 박해 전부터 “만일 박해가 일어나면 우리는 죽어야 할 터이니 천주의 영광을 현양하고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고통을 참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남편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당당히 죽음에 맞선 성인의 행동은 이 말과 일치한다. “만 번 죽어도 나는 천주를 배반할 수 없고 또 내 남편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며 부부의 연을 하늘나라에까지 이어간 부부는 1925년 같은 날 복자위에 올랐고, 역시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가정성화를 위한 순례성지인 ‘단내성지(www.dannae.or.kr)’는 남이관, 조증이 부부 성인을 기념하는 성가정성지다. 성지에는 부부 성인을 비롯해 이문우 성인, 이호영·이소사 남매 성인 등 가족 순교자들을 기념하고 기리는 순교비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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