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분노로 들끓는다. 이른바 ‘조두순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아동 성폭력 가해자 엄벌을 위한 법 개정과 더욱 강력한 사후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유례 없이 높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심정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동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여론은 들끓었다. 1994년 신설된 성폭력특별법은 그럴 때마다 수시로 개정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사회 아동 성범죄는 근절되기는 커녕 갈수록 충격적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영화 ‘피아니스트’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최근 스위스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1년 전 13세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였다. 이 소식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31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공소시효가 안 끝났어? 그동안 열두 번도 더 잊어버렸겠다. 무슨 성폭행 사건이 우리나라 살인 공소시효보다 긴 거야.”
“공인으로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 꼭 정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법과 의식은 외국에 비해 성범죄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사건이 발발한 후 분노만 할 것이 아니다. 이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근본적인 의식 개선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동을 성적 대상이자 서비스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권 침해다. 특히 성폭력은 신체는 물론 심리·정신적, 사회적인 부작용을 유발하는 심각한 범죄다.
실제 피해 아동들에게는 신체적 상해만이 아니라 행동발달 장애와 정서장애, 사회부적응 등이 평생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의 고통 또한 만만찮다.
“9년이 흘렀지만 그 기억을 지울 수가 없어요. 누군가 알까 두렵고, 결혼도 못하게 될까봐 미칠 것 같아요.”
“가족들이 다같이 힘들어하느니 ‘나만 입 다물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 억울함 때문에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어요.”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피해자들의 상담 내용이다.
게다가 성폭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각종 성범죄에 대한 의식이 낮은 것도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조두순 사건’에 대해 핏대를 올리는 이들 중에는 남성들도 많다. 하지만 자신이 성범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이미 우리나라 수많은 남성들이 아동 성폭력은 아니더라도 성매매를 통해 성범죄 가해자가 됐다.
사회의 부정적인 변화도 개선하기가 쉽잖은 문제다.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린이 성폭력의 변화와 요인’ 연구에서 아동 성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를 경제 위기와 연결시켰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는 없지만 가부장적인 권력 등을 가진 자가 문제 상황에 부딪히면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에게 불만을 표출한다는 설명이다.
또 천주교 성폭력상담소 김미순 소장은 “사이버 음란물 등 대중문화의 폐해로 아동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김 소장은 “자녀를 보호 대상이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는 인식으로 인해 친족에 의한 성학대도 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이혼 등 가정해체가 늘어남에 따라 더욱 눈에 띈다”고 역설했다.
더욱 심각해지는 현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리사회의 아동 성범죄는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하지 않은 사례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6세 이하 피해자 또한 꾸준히 생겨났고 재범률 또한 50%를 훌쩍 넘어섰다.
게다가 가해자 중 60% 이상은 ‘아는 사람’인 면식범이다. 여성부가 지원하는 아동 성폭력 피해전담기관인 ‘해바라기 아동센터’ 상담 건수를 보면 친족에게 당하는 경우도 20%나 됐다. 일반인의 짐작과는 달리 의부가 아닌 친부 가해자도 많았다. 아동 성폭력의 경우 안전한 사람도, 안전지대도 없다는 말이다.
또 저소득 가정 아동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부부갈등, 부모의 양육태도, 부모의 심리적 특성 등에 의해 더욱 쉽게 성폭력 피해 환경에 노출된다.
가해자들도 정신이상이나 알코올중독 등의 두드러진 문제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최근 경찰청은 공무원과 의사, 변호사, 교수, 종교인 등 이른바 전문 직종 종사자들의 아동 성범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 수위도 국민의 법 감정과는 괴리가 크다. 우리나라 성폭력특별법은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범죄에 대해 최하한을 징역 3년 혹은 벌금 1000만~3000만 원으로 정하고 있다. 상한은 징역 15년이다.
2007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자에게 징역이 선고된 경우는 27%에 불과했다. 73%(벌금 42%, 집행유예 31%)는 그냥 풀려나오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대부분 반성하고 있다거나 초범, 또는 피해자와 합의됐다는 게 감형 이유다.
의식 개선이 최우선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아동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성폭력이 일반 범죄보다 더 심각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시키는 것이 성폭력 예방의 최대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의식 개선이 선행되면 안이한 법 대응이나 예방책에 대한 해결 방안은 자연스레 따라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속적인 관심도 중요한 실천사항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수그러들면 각 정부 부처가 앞다퉈 내놓은 대책 실현에 대해서도 관심이 줄어든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었다.
가정과 학교 내에서의 성폭력 예방교육도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김미순 소장은 “최근 우리사회에도 아동 성폭력의 경우 신고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됐다”며 “그러나 실제 부모들이 예방교육에 참여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아울러 범국가적인 사회안전망 구축과 홍보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서울 용산 아동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지난 2006년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2월 22일)도 제정됐지만, 실제 몇몇 기관단체 행사 진행에 그칠 뿐 범국민적인 의식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러한 범국민적인 의식개선은 우리사회가 종교계에 적극 기대하는 바이기도 하다.
‘조두순 사건’에서도 경험했듯이 아동 성폭력은 일반 범죄보다 더욱 강하게 대응해야할 심각한 범죄다. 생명과 삶 전체가 달려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예방과 재발을 막기 위해선 남이 저지른 성범죄에 대해서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의식개선과 실천이 앞서야 한다. 어린이용 호신용품만 불티나게 팔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말이다.
■ 아동 성폭력 예방과 사후 대처
보건복지가족부가 2000~2007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사건을 분석한 결과 범죄자의 행동 유형은 ‘애착형’이 70.5%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때리거나 억지로 끌고가는 ‘폭력형’이 17%, ‘난 아빠 친구야’와 같이 거짓말을 하는 ‘도구형’이 10.5%의 비율을 보였다.
아동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이 자신의 몸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소중한 몸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만지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 관습상 어른들에게 순종해야 ‘착한 어린이’라는 인식이 많아, 그릇된 경우엔 ‘싫어요’라고 명확히 말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절대 아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왜 낯선 사람을 따라갔느냐’며 부모에게 혼날까봐 오히려 입을 다무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은 교통사고와 같이 일종의 사고라는 사실로 인식하고 아이가 죄의식을 갖지 않고, 인격을 지켜줄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울러 곧바로 병원 혹은 성폭력 전문상담기관을 찾는다.
교회 내 아동 성폭력 상담기관으로는 ‘천주교 성폭력상담소(02-825-1272, www.peacewell.org)’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직접 지원과 상담 뿐 아니라 예방교육과 아동 성학대 대응능력 강화사업, 저소득층 아동 무료 방문상담 등을 펼치고 있다.
■ 아동 성폭력 예방·교육에 도움될만한 도서
「말해도 괜찮아(문학동네)」
「난 싫다고 말해요(북뱅크)」
「슬픈 란돌린(문학동네)」
「다정한 손길(내 인생의 책)」
「학대받는 아이들(보리)」
「좋은 느낌 싫은 느낌(언어세상)」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게 나야(크레용하우스)」
-서울 해바라기 아동센터(www.child1375.or.kr)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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