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번째 서한에 대하여
최양업 신부의 아홉 번째 서한은 1990년 이전 출간된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있던 최양업의 비공개 서한이 1989년 10월 박태근 교수(명지대학교)가 영국의 외교문서에서 추가 서한을 발견함에 따라 밝혀졌기 때문이다.
본지는 1990년 1월 14일자 신문에서 ‘최양업 신부 비공개 서한 햇빛’이라는 제목으로 “최양업의 서한은 영국 주중공사 겸 홍콩 총독 바우링이 외무장관 클라렌든에게 보낸 1854년 8월 25일자 서한에 발췌본의 형태로 포함됐다”고 전한 바 있다.
발췌본의 형태로 발견된 이 아홉 번째 서한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당시 바우링 총독이 이 편지를 입수한 후 회수시키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1853년 10월 23일
“마카오의 스승신부님께, 온 나라가 온갖 재앙 때문에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부자, 천주교인, 외교인, 양반, 상민, 강자, 약자 할 것 없이 누구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먹히고, 강자와 약자는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조정의 신하들은 늘 평화,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계속 노름과 폭음과 추잡한 연회로 자신과 백성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최양업이 아홉 번째 서한에서 편지의 수신인으로 명기한 ‘마카오의 스승 신부님’은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대표부의 리브와 신부로 추정된다.
발췌본으로 남겨진 최양업의 서한의 몇 줄은 철종시대 지배층의 도덕적 부패, 정치적 타락상을 고발하는 내용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혼란했던 시대상을 짐작케 한다.
당시 바우링 총독은 영국정부에게 영국이 쇄국상태의 조선을 개항시키자는 제안과 함께 자신에게 조약체결권을 부여해 줄 것을 요청해야 했다.
따라서 조선개항의 필요성을 영국정부에 설득하기 위해 그에 대한 자료로서 최양업의 서한을 동봉한 것이며, 서한 가운데서도 정치적 고발성이 짙은 내용만을 발췌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본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어 아쉽게도 몇 줄 되지 않는 발췌본의 형태로 남은 최양업의 아홉 번째 서한은 시대의 끔찍함과 백성들의 탄식을 전하며 끝을 맺는다.
“왕은 이름뿐이고 아무 실권도 없습니다. 관리들은 대신들에게 더 많은 돈을 바쳐야 출세합니다. 그래서 바친 돈을 보충하고 자기 재산을 불리고, 은인들에게 사례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수탈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형편이 얼마나 끔찍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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