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부친인 성 요아킴과 모친 성 안나를 소개한데 이어, 이번 주부터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한 명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모 마리아는 성미술의 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고 또 그려졌으며 주제는 탄생부터 승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첫 번째로 성모님의 탄생이 있는데 예수님의 탄생이 마굿간이라는 초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모님의 탄생은 화가가 속한 당대의 아름답고 호화로운 저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에나 출신의 화가 피에트로 로렌체티가 그린 ‘성모님의 탄생’은 이 주제의 대표작에 속한다. 시에나는 토스카나 주에 속한 아름다운 중세 도시로서 정치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14세기에는 피렌체와 라이벌 관계를 이룰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바로 이 무렵 예술적으로도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배출하였는데 피에트로 로렌체티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피에트로의 대표작에 속하는 ‘성모님의 탄생’에 관하여는 1335년 11월에 기록된 한 문헌에 “성 사비노 그림을 위해 피에트로가 금화 30피오리노를 받았다”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즉 이 그림은 시에나의 대성당 안에 있는 성 사비노 제대에 모셔진 제단화로서 주문자는 세냐 디 리노라는 사람으로 시에나 주정부의 주요 인물이자 부유한 은행가였다.
이 작품이 제작된 14세기는 양식사적으로는 고딕 시대에 속한다. 고딕은 중세의 관념적인 성화에서 벗어나 화가들이 현실에 관심을 돌려 세속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그림은 세 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과 오른쪽은 성모님이 탄생한 방 안이며, 왼편은 방과 붙어있는 대기실이다.
방 안의 전경을 보면 성모님의 어머니이신 성 안나가 몸을 막 풀고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원근법에 의해 깊이감이 느껴지도록 그려진 체크무늬의 침대보는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화가에게는 자신의 회화적 능력을 보여줄 절호의 모티프로 쓰인 듯이 보인다.
침대 아래에는 갓 태어난 아기를 씻기는 두 하녀가 보인다. 한 여인은 아기를 안고 대야의 물 온도를 조절하고 있고, 다른 여인은 물을 붓고 있다. 이들의 바로 뒤에는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서 있는데 손에는 파리채 같은 것을 쥐고 있다. 재미 삼아 등장한 이 제3의 인물은 그야말로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그림의 전개상 감초역할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뒤에 있는 깨끗한 수건과 필요한 물품이 들어있는 광주리를 들고 있는 여인들 역시 그림에 꼭 필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일종의 엑스트라로서 이런 인물들을 도입은 이 그림이 이전의 딱딱한 중세식 그림에서 탈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역시 그림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는 요소로서 화면 왼쪽에는 아내의 출산 중 방에는 들어오지 못한 성 요아킴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한 아이로부터 아이의 출산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방, 가구, 세숫대야나 물동이와 같은 오브제,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의상은 정성껏 치장된 서양 사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성모님이 양갓집 규수였다는 점에서 착안된 ‘성모 마리아의 탄생’이라는 주제가 이 화가에게는 그림의 장식미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것 같다. 이후에 그려진 수많은 성모님의 탄생이 한결같이 이 같은 인물들로 구성된 것을 보면 이 한 점의 그림이 후대에 미친 영향이 놀랍기만 하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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