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천주교회 창설주역의 생애와 순교사실과 그 평판에 관한 연구(류한영 신부, 양업교회사연구소장)
권일신, 권철신, 이승훈의 생애와 순교 사실과 그 평판에 대해 연구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비판적인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세 분은 당대에 유명한 유학자이며 보유론적인 관점으로 신앙의 진리와 유교의 덕목을 동시에 인정하려 했다는 점, 순교 평판과 순교 사실이 문초 기록과 교회 기록 그리고 집안 구전에서 상이하게 발견된다는 점, 세 분의 삶과 죽음을 통한 신앙 고백의 명확성이 의문시 된다는 점 등이다.
이 세분은 다블뤼와 달레에 의해 서로 다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다블뤼와 달레는 권일신의 순교 사실에 대해 유보적이며, 권철신의 순교 사실에 대해 긍정적이고, 이승훈의 순교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분들의 순교 사실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입증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구전·교회기록 통해 평판 전해져
세 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점들은 집안 구전 또는 교회 기록을 통해 순교의 평판들이 전해지고 있다는 점, 초기 한국 천주교회에 커다란 공로를 남긴 분들이라는 점, 현재 교회 안에서 이분들의 시복시성을 원하고 있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는 이분들을 순교자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순교의 평판들이 진정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고 순교사실에 대해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위 세 분에 대한 다블뤼 기록과 달레 기록을 비교하여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가 다블뤼 비망기의 기록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달레는 다블뤼의 기록을 충실히 전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가지 명확하지 않은 사항들에 대해 달레는 자기 나름대로 조사하여 보충하거나 단정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승훈의 순교 평판과 그 사실에 대해서 달레는 배교로 단언하고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으나, 권철신의 순교 평판과 그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을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그는 권일신의 순교 평판과 그 사실에 대해서 다블뤼의 견해와 일치하면서도 ‘그에 대한 순교 사실을 확증할 수 없음’을 더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오늘을 사는 신앙인은 현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창설 주역 세 분에 대해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 교회는 동양의 조상 제사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신앙의 잣대를 들이대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동양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많은 고뇌와 혼란을 야기한 점을 우리는 잘 참작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1939년 조상 제사에 대해 사회적 의의와 미풍양속의 긍정적인 면을 새롭게 평가했는데 이는 이미 세 분 창설 주역이 요구했고 그렇게 신앙 안에서 조화시키려 노력하였던 사항이다.
다블뤼 주교나 달레가 살았던 시대는 조상 제사와 동양의 근본 가치인 효와 충에 대해 아주 엄격한 신앙의 잣대를 가지고 사는 시대였기에 위 세분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의 시야가 좁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블뤼 주교는 관용적인 시각을 전혀 갖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구한 윤리덕과 명성을 가진 권철신의 순교 사실에 대해 관대하게 평가하였다. 다블뤼 주교는 순교에 대한 부정적 평판이 있었음에도 유항검, 이존창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블뤼 주교는 계속 뒤로 물러나고 베드로처럼 부인하는 이승훈의 순교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하였다. 이러한 점은 한국인의 심성을 더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승훈의 사형 선고문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거나, 이승훈 집안의 구전을 과소평가하였거나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훈에 대한 긍정적 증거 발견
근래에 여러 연구를 통해 이승훈의 신앙 고백과 순교에 대한 긍정적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권일신에 대해서는 최근의 연구로 새롭게 조명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필자는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번역본이 보급됨에 따라 이승훈의 순교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이 많이 퍼지게 되었음을 발견하였다. 보유론적이고 종교 화해의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은 이러한 선입견에서 좀 더 자유로울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승훈과 권일신의 신앙고백과 순교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요소보다 긍정적인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하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창설 주역 세 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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