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쁘게, 그리고 주님 뜻이 무엇인지 좇으며 살다보니 얻게 된 커다란 은총입니다.”
1959년 10월 3일 부산교구 중앙본당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에서 첫 발을 내딛은 김해걸(예로니모·송도본당) 전 부산레지아 단장의 레지오 마리애 인생은 어느덧 반세기라는 세월이 흘러 커다란 금자탑을 이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 전 단장이 50년의 기나긴 시간동안 단 한 번도 레지오 주회에 결석 없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청년시절 특별히 당시 부산교구 중앙본당 주임이던 고 장병화 주교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 장 주교님께서는 젊은이들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특별히 레지오 단원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주교님의 헌신적인 사목에 힘입어 많은 젊은이들이 신앙생활과 레지오의 참 기쁨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김 전 단장은 교적을 송도본당으로 옮기며 본당 레지오 활동 뿐 아니라 범 교구적인 활동으로 한국교회에 봉사해 왔다. 1973년 부산 바다의 별 레지아 단장, 한국 레지오 마리애 40년사·50년사 편찬, 부산교구 레지오 마리애 50년사 편찬, 교구 평협 사무국장·부회장 등 김 전 단장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동참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김 전 단장은 “군 제대 후 건강 악화로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래서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건강관리에 힘썼던 것이 오히려 개근하게 된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위기는 없었을까. 김해걸 전 단장은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수술을 받았던 무렵 레지오 주회에 결석할 뻔 한 큰 위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입원 후 레지오에 참석하지 못함에 우울한 날을 보내던 중에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을 품에 모시고 병실로 다 같이 방문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결국 레지오에 참석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던 걱정이 날아가고 모든 단원들이 함께 기도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김 전 단장은 “신앙은 삶의 일부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대 젊은이들이 기도 생활에 소홀한 것이 안타깝다”면서 “교회는 젊은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50년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더 많은 봉사를 위해 투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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