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설립, 56년 된 성당의 지붕을 이루던 기와는 조각조각 깨어졌다.
그렇게 나온 1만여 장의 기와. 자녀의 시험합격, 어머니의 병환 쾌차, 아프고도 행복한 사연을 귀담아 들었을 성당 지붕의 기와는 그렇게 버려질 뻔했다.
의정부교구의 중심, 의정부 주교좌본당(주임 서춘배 신부)의 ‘기와 이야기’다. 사적지로 지정된 유서 깊은 이 성당은 보수공사를 거치며 버려졌어야 할 기와에 ‘그림’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입혔다.
신자들의 기도에 귀 기울였을 기와에 깨진 모양 그대로 그림을 그려 성당 안에 전시한 것이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가을, 전시회의 이름은 이렇게 시작했다. ‘주님께로 향하는 기도의 흔적.’
10월 16~19일, 의정부 주교좌성당에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2007년 복원작업을 시작하며 생겨난 의정부 주교좌성당의 기와에 그림을 그려 마련한 전시회다.
전시회를 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올해 7월, 첫 모임을 가지고 김태수 신부(전 의정부 주교좌본당 주임)의 지도 아래 서양화가 손소현(폴리나)씨, 화가, 미술교사, 취미생, 한지공예가, 서예가, 본당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본당 구석에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하얀 텐트 한 채가 설치됐고, 미술에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기와를 닦아 옮겨주었다. 그마저도 힘든 할머니와 신자들, 인근 바오로딸 서원의 수녀는 간식 준비와 기도로 자리를 지켰다.
‘주님께로 향하는 기도의 흔적’이 담긴 기와는 아기 만지듯 다뤄졌다. 보수작업을 하며 깨져 모가 나 있는 그대로를 정성스레 닦아 말리고, 먼지를 턴 다음 흰색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아크릴 물감과 겔을 섞어 그리고 반짝이도록 마무리했다.
기와 500여 점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부터 성모, 십자가의 길, 주기도문, 성경에 나오는 여러 장면들이 형형색색 그려져 있다. 이름 높은 화가가 그린 그림도 유명한 미술관에 걸린 작품도 아니지만, 의정부교구민들의 간절한 기도가 스민 기와 위에 물감이 아닌, 기쁨과 눈물로 그려진 그림들이다.
전시회 준비를 함께한 이농주(효주아녜스)씨는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사연을 풀어간 곳이기에 기도가 스며있는 기와를 차마 흘려보낼 수 없어 성화를 그려 하느님 사랑을 남기고자 했다”며 “작업하는 순간조차 저희에게는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미처 작품이 되지 못한 주교좌본당의 기와들은 신설된 의정부교구 고읍동본당으로 전해졌고 같은 과정을 거쳐 성당건립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문의 010-3137-3037 봉사자 이농주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