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자립이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아가는 거죠.”
자활?자립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등 순탄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겐 ‘경제적인 독립’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반면 저소득, 저학력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영위해 나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활·자립은 또 다른 의미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조차 지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은 자립을 생존자체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들에게 자활·자립은 절박한 문제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한낱 희망사항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최선을 다해보기도 전에 자활·자립의 기본적인 기회와 환경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들에게 가난의 대물림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이번 가톨릭신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공동기획 ‘당신이 희망입니다’에서는 ‘마음으로부터의 노동, 협력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지역 내 저소득층의 자활·자립에 힘쓰고 있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이사장 김운회 주교) 송파지역자활센터를 찾았다.
“소외된 분들에게 배달될 도시락인데 정성들여 만들어야죠. 그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죠.”
10월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도시락 집. 위생장갑, 위생마스크를 착용한 10여 명이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며 도시락 포장에 여념이 없었다. 맛, 영양, 위생까지 무엇 하나 방심할 수 없다는 비장함에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아침 내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이들의 이마엔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점식식사로 300여 개의 도시락을 동료들과 함께 준비한 김경락(가명·45)씨는 “매일 반복적인 일로 힘들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소외계층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보람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를 비롯한 이들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송파지역자활센터의 ‘행복캐더링’ 직원들. 행복캐더링은 송파지역자활센터에서 자활·자립 교육을 받은 저소득층이 주축이 된 사회적 기업이다. 지역 내 사각지대에 놓인 결식 이웃과 실직빈곤층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지원하며 직원들의 자활·자립을 위한 도시락 판매, 출장뷔페도 병행하고 있다.
행복캐더링 같이 저소득층의 자활·자립을 위한 센터 사업은 위생소독사업, 의류수선리폼사업, 장애통합교육보조원사업 등 총 13개. 사업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저학력, 저소득층으로 지역 내에서 자활·자립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이다. 센터 김정락 실장은 “저소득층이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러한 기반이 장기적으로 볼 때 저소득층에게는 더 큰 효과를 보인다”고 말했다.
사업에 참여한 단원들은 서서히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 갔다. 그동안 하고 싶은 것도, 마땅히 잘하는 것도 없다고 여긴 이들이었다. 자활센터에 오기 전에 식당에서 일한 가사간병방문도우미서비스사업단의 김정미(가명)씨는 “누군가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고 작은 베풂에 감사를 전할 때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며 “그럴수록 어르신들께 한발 더 다가서서 정성으로 보살펴드려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근로의욕은 물론 자신감도 늘었다. 의식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가난하게 살고 소외받은 경험을 가진 단원들에게 지역 내 저소득계층은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웃이었다. 사업에 참여하며 자활·자립은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센터가 지향하는 바도 ‘상생’이다. 위생소독사업단의 박정배(가명)씨는 “타인과의 이해관계를 통한 공유와 협력이 자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이런 생각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하니 근로의욕도 상승하고 사업단의 새로운 가족들과의 설레는 만남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센터는 소외계층에게 자활·자립의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지만 정작 운영에 있어 어려움은 크다. 지역 내 일자리를 제공해야할 저소득층은 많은데 한정된 시장에 진행할 수 있는 사업도 극히 제한적이다. 이에 대해 김정락 실장은 “정작 중요한 것은 진정한 자활·자립의 의미를 되새기고 고심해 볼 수 있는 교육적인 차원인데 정부에서는 그저 성과만 내면 된다는 생각에 외형만 키우는 복지를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실장은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 사업만 더 키워나간다면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사업마저도 외면당해 저소득층의 자활·자립의 꿈은 더 멀어지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은 어둡지만 센터직원들은 지역 저소득층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자신의 조그만 노력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열정을 다하게 한다.
송파지역자활센터 가사간병을 담당하는 박효진 복지사는 “지쳐 힘들 때도 있지만 자활에 성공해 감사의 전화와 편지를 받을 때면 작은 힘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올바로 이끌었다는 뿌듯함에 더 분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을 비롯한 센터 직원들이 힘든 여건에서도 매일 희망을 전하는 이유다.
자활·자립하려는 저소득층, 이렇게 도울 수 있습니다.
※후원·자원봉사문의 02-416-7119 송파지역자활센터, 02-727-2257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자원개발팀
※후원 계좌 100041-51-005084 농협 (송파지역자활센터), 1005-101-087283 우리은행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모금된 금액은 송파지역자활센터를 비롯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시설 지원 사업에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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