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그로스씨는 예뻤다. 선한 눈망울이 천사 같았다. 한쪽 가슴을 다 도려내고도 선하게 웃었다. 엷은 미소로 오랜 세월 설움에 맞섰고 병마와 싸웠다.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 가족을 위해 평생을 일했다. 오빠 내외와 조카, 두 여동생과 그 가족, 남동생 내외와 그의 아들, 반신불수의 아버지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어머니까지 열다섯 명에 가까운 가족들이 오로지 밀라그로스씨 만을 바라본다.
가족의 생계는 가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필리핀 전통에 따라, 가장이 된 그는 20년째 모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1993년 조그마한 공장에 바느질 여공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96년 대만으로 건너가 또 바느질로 가족들을 먹여살렸다. 그리고 1999년에 한국으로 왔다. 더 나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래서 가족들에게 더 많은 걸 해주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을 포기했다. 학업도, 결혼도, 자신만을 위한 가정도 미련없이 포기했다. 오로지 조카들과 동생과 오빠와 부모님을 위해 20년을 헌신했다. 한 달 60만 원 남짓한 빠듯한 월급을 받아, 거의 모든 금액을 가족에게 송금했다.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그 돈으로 한 달을 걱정없이 살아갈 가족을 생각하며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병을 얻었다. 유방암이었다. 하늘이 노랬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족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잠시 사정이 생겨 송금을 하지 못한다 말하고 홀로 수술대에 누웠다. 왼쪽 가슴을 깨끗이 도려냈다. ‘만일 내가 다시 눈뜨지 못한다면….’ 차가운 침대 위 밀라그로스씨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만 한다. 가족을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만 한다. 야무진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20년을 일했지만 자신을 위해 마련해둔 돈 한 푼 없다. 수술비도, 치료비도 막막하기만 하다. 가족을 위해 일한 20년 세월이 억울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밀라그로스씨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가족을 위한 일인데 억울할 게 무엇이 있겠어요? 빨리 건강을 회복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제 꿈은 가족을 위한 새 집을 짓는 거예요. 빨리 그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밀라그로스씨는 병상에 누워서조차 가족을 위한 꿈에 젖어있었다.
“가족들에겐 제가 아픈걸 알리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든 혼자 힘으로 일어설 거예요.”
36세 가냘픈 몸매로 연신 미소를 띠던 밀라그로스씨의 선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 도움 주실 분 703-01-360421 농협 1006-792-000001 우리은행 (주)가톨릭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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