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화려한 그릇, 참 많다. 무겁고 투박하기만 한 옹기는 새로 등장한 그릇들에 밀려 제자리를 잃은 지 오래. 하지만 사람들이 ‘쓸모없다’며 버리는 옹기를 전국을 다니며 사 모으는 이가 있다. 20년 동안 1000여 점의 옹기를 수집한 석정우(대건 안드레아·62·대구 범물본당)씨가 그 주인공. ‘그만 하면 이제 됐다’는 가족들의 만류도, ‘백자·청자 등에 비하면 볼품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혹평도 그의 옹기 사랑을 꺾지는 못했다.
“백자·청자는 예쁘지만 서민들의 실생활에 크게 사용되지 못했어요. 양반들의 문화였던 겁니다. 하지만 옹기는 모든 집에서 모든 용도의 그릇으로 사용됐어요. 김장을 하면 옹기독에 담아 보관했고, 밥을 먹으면 밥·국·반찬 등을 옹기에 담아 상 위에 올렸지요. 쓰임에 맞게 각양각색인 옹기의 모습을 보면 조상들의 삶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그게 옹기의 가장 큰 매력이죠.”
옹기의 매력에 대한 석씨의 자랑은 그칠 줄 모른다. “옹기는 옹기토를 일일이 손으로 빚어 만들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방법으로 만든 무늬도 제작자가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요. 각기 다른 그 개성이 옹기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그의 닉네임은 ‘옹기 지킴이’.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옹기를 지켜나가겠다는 고집이 담겨 있다.
▨ 석정우씨의 옹기 수집
석씨가 ‘수집’이라는 취미생활을 옹기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모으기 시작한 것은 남들 따라 시작했던 우표 수집이었지만 얼마 못 가 흥미를 잃었다. 그 후 수집한 것이 복권. 약 1000여 회의 복권을 모으다보니 복권 위에 그려진 국보·보물 등의 문화재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처음엔 저도 도자기류에 눈길이 갔죠. 몇 점 소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아봤는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부담없이 시작하려 옹기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그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소박하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 그 매력에 빠져 옹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석씨. 아파트에는 장독 등의 큰 옹기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주택으로 집까지 옮겼다. 현관, 방 한 칸을 가득 채우고도 큰 옹기는 모두 옥상에 ‘모셔뒀다’. 수집한 1000여 점 옹기의 특징, 제작연대 등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나라 옹기 역사는 200년 내외예요. 하지만 그 광범위한 쓰임에서 다른 그릇과는 비교되기 어렵죠.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쉰 이 귀중한 보물들이 잊혀지는 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 석정우씨의 신앙 생활
석씨는 어린 시절 개신교 신자였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게 바빠’ 그마저도 그만두고 무교로 지냈다. 신앙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삶.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매일 이혼이 언급될 만큼 급격히 나빠진 부부생활에 해결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말 사사건건 부딪쳤어요. 아내에게도 저에게도 힘든 날들이었죠. 그 즈음에 금슬 좋기로 소문난 이웃집 부부가 우리에게 ME를 추천해 주셨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몇 주 교육에 참여했는데, ‘내 삶의 방향이 잘못됐구나’하고 깊이 깨달았지요.”
1988년 세례를 받은 후 부부생활도 마음가짐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의 오랜 취미 옹기 수집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특이한 옹기가 있다고 해서 보러갔는데 뚜껑 위에 십자가가 떡하니 새겨져 있지 뭡니까. 이게 웬일인가 싶었죠.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그런 게 한 두 개가 아니에요. 굴뚝 연가(굴뚝 위에 꾸밈으로 얹는, 기와로 만든 지붕 모양의 물건) 위에 비둘기가 빚어져 있고, 100여년 전 그릇에 ‘임마누엘’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박해가 심했던 조선시대에 천주교인들이 산 속으로 숨어들어 옹기를 구워 팔았다는 사실과 그 맥을 이은 현대 옹기장이 중 많은 이가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고.
“‘옹기수집’이라는 우연히 시작한 취미생활과 한참 후에 시작한 천주교 신앙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걸 알고는 충격을 받았어요. 일부러 알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하느님이 나를 부르신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후 석씨는 천주교와 관련된 옹기만을 전문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석씨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이제 십자가·비둘기·천사 등이 새겨져 있는 옹기가 있는 곳에서 먼저 연락이 올 정도라고.
“숨어 살면서도 그릇에 십자가를 새길 정도로 강렬했던 믿음, 그것을 우리가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앙 선조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옹기들도 재평가 되어야 합니다. 이대로 잊혀지기엔 너무나 소중한 유산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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