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건비 절감 방안에 매달려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차별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법제도와 정책이 필요합니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
“교회는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사목뿐만 아니라 국내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사목에 투신해야 합니다.”(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오기백 신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양극화는 물론 다양한 사회문제를 발생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가 나섰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10월 16일 오후 2시 서울 신수동 예수회 사도직센터에서 ‘비정규직 문제해결과 사회연대 실현을 위한 성찰과 실천과제 : 사회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의 과제’와 ‘비정규직 문제와 천주교회의 성찰’을 주제로 발제가 이뤄진 이번 토론회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최재황 이사, 한국노총 이상원 부위원장 등이 참여해 한국 비정규직의 문제와 현실적인 해결책 등을 함께 고찰하는 자리가 됐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비정규직 토론회를 개최하며’란 인사말에서 “우리 사회는 소위 2 : 8 시대로 표현되는 양극화가 일반화된 사회이고 그 한쪽 극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해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
■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의 과제 - 발제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
고용원칙 확립·사회적 연대 복원 시급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의 확대와 차별의 심화는 나날이 심화된 한국 사회 양극화의 반영물이며, 동시에 사회 양극화를 확대재생산하는 핵심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임시직과 일용직의 감소에도 불구, 간접?특수고용의 증가로 인해 비정규직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2000년 이후 절반을 넘는 수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2008년 8월 현재 전체 임금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185만 원이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250만 원,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24만 원이다. 앞으로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줄이거나 완화시킬 방안이 사회 제도적으로 준비되지 않는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계속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비정규직은 복지로부터 배제된 경우가 많다. 2008년 8월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국민연금(33.1%), 건강보험(35.3%), 고용보험(33.4%) 등 35% 내외다. 복지 적용률은 이보다 낮아 법정복지인 퇴직금은 26.3%, 시간 외 수당은 13.6%, 비법정복지인 상여금은 19.8%, 유급휴가는 19.8%가 적용받고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연령 차별 그리고 세대간 격차와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연령별 고용해결책과 세대별 조직화 방안 마련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비정규직 중 구성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청년 그리고 중고령자다. 연령대별 정규?비정규직의 비율을 보면 정규직은 뒤집어진 U자형이고, 비정규직은 U자형이다. 즉 25세 미만과 40세 이상에서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으며 정규직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대는 25~39세 구간이다.
민주화 이후 노동정책은 노사관계 제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상반되는 시대적 요구 중 항상 후자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정치민주화를 통해 노동정책의 제도적 개혁이 실현 가능한 범주 안으로 들어온 시기가 바로 세계화, 유연화라는 자본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흐름에 직면했던 시점과 겹친다. 제도화와 유연화 두 가지 방향 중 정부의 선택은 언제나 경제적 생존과 성장에 초점을 둔 유연화 우선의 방향이었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의 확대는 차별적인 저임금과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노동시장 내에서의 불평등 구조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빈곤의 확대와 양극화를 구조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양극 분해된 사회의 비극을 초래하는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상시적 일은 정규직에게, 임시?일시적인 일은 비정규직에게’ 라는 상식에 기반한 고용원칙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기간제한 중심의 비정규 해법은 한국 사회에 만연된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제어하는 데 역부족이다. 또한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주체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가 핵심 요인이다.
또한 사회적 연대의 복원이 시급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 비정규직의 자각과 주체적인 문제해결의지, 사회적 연대를 통한 광범위한 지지가 중요한 동력이다.
가톨릭교회도 비정규직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종교재단도 비정규 활용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시장에서 생존해야만 했다. 오히려 남들과 같이 악을 행하는데 선의 이름으로 행하기에 배신감은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실제 교회가 운영하는 모병원에서 일어났던 비정규직 문제는 교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을 거라 여겨진다.
■ 비정규직 문제와 천주교회의 성찰 - 발제 :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오기백 신부
교회, 노동권 보호 앞장서길
경제문제 노동문제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기여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분명하다. 나라 경제를 위한 청사진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으로서 윤리적,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우리 교회는 산업화된 사회를 성찰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사회 교리를 발전시켜 왔다. 이 교리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움과 도전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교회의 가르침은 참된 가치는 무엇인지 식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에 구체적인 도움으로 다가온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로 희생당하면서도 노력하는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과 각별한 관련성을 갖고 있는 사회교리는 그 적용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체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가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했던 예수의 제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창조하시고 노동의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은 나자렛 요셉처럼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노동은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특성이며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인간 노동에 관한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은 필수이며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의 핵심 권리다. 전통 가톨릭교회의 사회회칙은 이 밖에도 정당한 임금, 노동과 직장, 경제체계,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1960년대 말~1980년대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 교회는 노동문제를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들에게 맡기고 개입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같은 업종의 대학과 병원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주요기관의 운영주체가 됐다. 이미 교회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으로 변화했으며 위상이 높아지면서 노동문제는 힘들고 복잡한 문제가 되고 말았다.
교회의 가르침대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노동자들의 연대를 지지한다면 정부와 대립적인 관계를 맺게 될 뿐만 아니라 같은 교회 내에서 큰 힘을 갖고 있는 권력자들과 대립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2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제도는 노동에 대한 교회 인식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2.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으로 직장 안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임금차별을 받게 된 구조는 불공정한 것이다. 합법적이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3. 모든 재화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일자리를 창출을 위해 자기 재산을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4. 정부가 공동성을 위해 개입해야 할 의무가 있다.
5. 교회는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사목뿐만 아니라 국내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사목에 투신해야 한다.
6. 교회는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기관의 직원들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비정규직 문제 토론회
“비정규직 노동자 삶의 질 향상에 매진해야”
발행일2009-10-25 [제2669호, 24면]
▲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6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사도직센터에서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
▲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오기백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