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료 의료봉사팀에게 안과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김말순(76) 할머니
“앞이 잘 안보여. 안과에 가려고 해도 우리 동네엔 병원이 없어서 속초까지 나가야 하는데…신경통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거든. 그런데 얼마나 좋아. 이렇게 서울에서 의사선생님들이 와서 눈도 치료해주고 무릎 연골 주사도 놔 주고…난 성당도 다니지 않는데, 무료로 다 치료해준대. 오늘 호강에 받친 날이네!”
# 바자에서 호두팔기를 맡은 여든 한 살의 정을순(마리아) 할머니
“올해 여든 하나야. 자식들 분가시키고,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먼저 하늘로 돌아가고 지금은 혼자 살아. 오늘 잔칫날, 난 호두과자 팔기를 맡았어. 손님들이 많이 오니까 기분이 좋아. 서로서로 믿고 사니까 얼마나 좋아. 혼자는 못 살거든. 오늘 정말 기분이 좋네.”
# 잘 익은 막걸리와 황태구이 안주에 행복한 네친구 최봉실(72·도밍고) 김진태(75·가롤로) 권오형(78) 최동호(73) 할아버지
“우리 친구들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어. 그렇지만 오늘 우리 성당 잔치에 내가 초대를 했지. 하늘나라 가기 전에 꼭 세례를 받겠다는 다짐을 받았어. 평생을 함께한 친군데, 하늘나라도 같이 가야지!”
10월 25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사랑의 바자와 무료 의료봉사 날. 강원도 고성군 거진성당 앞마당에 만국기가 걸렸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펄럭이는 깃발처럼, 거진본당(주임 맹석철 신부) 신자들의 마음도 한껏 부풀었다. 사랑과 행복이 마음에 넘쳐 눈빛도, 말씨도, 몸짓도 곱다.
코다리, 파전, 잔치국수, 안흥찐빵, 흑돼지구이, 버섯, 막걸리…보기만해도 군침이 도는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3000원’이란 가격표가 붙어있는 의류코너도 웬만한 5일장 수준. 은은한 옥빛의 도자기에서부터 서랍장, 머리핀까지 총 3000만 원 규모의 큰 시장이다.
“여기 있는 옷가지며 도자기, 장신구, 생활필수품 모두 100% 기증을 받은 것들입니다. 신자들이 함께 전국을 돌며 바자 취지를 설명하고 기증을 받았지요. 서울 가락시장과 동대문시장에 몇 번이나 갔어요. 각종 복지관과 본당에서도 많이 도와주셨고 익명의 은인들도 많아요. 세상에는 아직 좋은 마음씨의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지요. 2.5t 트럭으로 여섯 번이나 기증품을 실어 날라야 했으니까요. 택배로 보내주신 상품들이 본당 앞에 가득 쌓였었습니다.”
지난 4년간 바자를 맡아 진행해온 김동수(노엘) 본당 총구역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독거노인이 많은 지역사회에 등불이 되고자 바자를 기획했던 전임 신부(오상현 신부·현 춘천교구 옥계본당 주임)의 뜻을 따라 처음 바자를 준비했을 땐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기증을 받아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그러나 전 신자가 한마음으로 나선 결과, 처음 10개에 불과했던 천막수가 28개로 늘어나고, 그 규모도 4배 이상 성장했다. 본당 신자 수나 봉사자 수에 비해 바자 규모가 너무 커 행사진행에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다는 생각에 신자들은 즐겁다.
서울 방배4동 무료 의료봉사팀 ‘요셉회’는 거진본당 바자의 귀한 손님이다. 서울대, 인하대, 가톨릭대 교수진 및 개원의 23명과 간호사, 약사, 기타 지원 등 총 50명이 거진본당을 찾았다. ‘요셉회’는 국내 유일 ‘이동치과버스’와 초음파 검사기기까지 동원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서민호(요한) 서울방배4동 장년분과위원장은 “작년에도 거진본당을 찾아 1600명을 진료했고, 올해도 강원 영월 주천본당에서 봉사했다”면서 “무료 의료봉사를 통한 선교활동을 계속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봉사에 나선 주일학교 학생들의 손놀림도 분주하다.
“저희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쌀쌀한 날씨에 하루 종일 고생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차 봉사를 맡았어요. 그 외에 잡다한 심부름도 맡았고요.”
총 35명 규모의 작은 주일학교 공동체지만, 어르신들을 모시는 마음가짐만큼은 어느 본당공동체보다 크다. 교적을 두고 있는 신자수는 총 700명, 그중 실질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110명 남짓한 신자들, 그 신자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어르신들 틈에서 젊은이로서의 예의를 배워가고 있다는 주일학교 학생들의 밝은 웃음에 거진본당의 미래가 담겨있다.
본당 주임 맹석철 신부는 “바자를 통해 독거노인 분들을 비롯한 소외된 지역사회 이웃에게 연탄과 현금을 지원해왔다”면서 “지역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모두가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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