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 전례에 참석한 아프리카 수단 아강그리알 신자들의 모습.
- 아프리카 수단에서 현지인 사목을 위해 땀 흘리는 한만삼 신부의 다양한 사목체험을 담은 ‘수단에서 온 편지’가 금주부터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해외선교를 위해 파견된 교구 사제의 진솔한 이야기, 아프리카 신자들의 신앙생활, 우리의 관심과 지원이 여전히 필요한 세계의 이웃 모습이 2주에 한번 전해집니다. 아프리카 수단 선교활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 시작되는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청합니다.
건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다소 쌀쌀해지는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25℃ 정도면 여기 사람들은 추위를 느끼는데, 저도 함께 추위를 느끼는 것을 보면 이곳 기후에 적응하고 있나봅니다. 쌀쌀한 아침기온에 처음 드는 생각은 주일미사 대량 지각 사태입니다. 그렇다고 평상시에도 신자들이 일찍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구름이 끼거나 기온이 내려가면 사람들의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지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나가보니 역시 예상대로 30~40명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미사는 10시 정각에 시작합니다. 미사가 춤과 노래로 이어져 두 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 전 아강그리알 최고의 축제인 10.10 콤보니데이(최초로 수단에 들어와 아프리카 선교를 시작하신 성 다니엘 콤보니 성인축일)를 기념해서 케냐에서 제작해서 가져와 나누어준 흰 티셔츠를 입고 미사에 왔습니다. 단체로 맞춘 티셔츠를 아주 소중한 제복처럼 귀한 비누로 깨끗하게 빨아 숯불 다리미로 다려서 각을 잡은 티셔츠를 보고 혼자 미소를 짓습니다.
오늘 복음이었던,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라는 예수님이 말씀에 가슴이 떨려옵니다. 마치 예수님의 명령의 현장 앞에 서있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구 반 바퀴 너머 찾아온 이곳에서 저는 이방의 사도입니다. 이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고, 이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경험해보거나, 받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니 여러분이 먼저 받기만을 바라지 말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몇 번을 강조했지만…. 오랜 내전으로 이미 구호물자를 받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진 이들일 뿐만 아니라, 가정방문을 해 보아도 당장 먹을 것조차 변변하지 못한 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치는 것은 실천적으로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처럼, 실은 먼저 제가 가진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를 쪼개어 그들이 달라는 만큼 나누어 주어야 했습니다.
올해는 씨앗이 자라나야할 우기 때 비가 오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망쳤습니다. 땅을 경작할 만한 마땅한 농기구도 없고, 씨앗도 없고, 기술도 없어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수확도 없는 이들에게 서로 먹을 것을 나누라니요. 경작이 가능한 6개월의 우기 동안 이들이 그해 먹을 것만이라도 충분히 거두어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산책길에서 이제는 잎사귀밖에 남지 않은 호박 넝쿨에서 호박잎이나마 한 아름 따서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잎을 자르고 있는 자매를 만나고 돌아와 그 모습이 어른거려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그나마도 호박잎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이들이 하루에 두 끼를 먹을 수 있다면….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세상은 풍요에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왜 이곳은 이리도 척박하고 굶주려야 한단 말입니까?
오늘 주일미사 때 주일 헌금으로 14파운드(한화 7천 원 정도)와 달걀 두 개, 그리고 수확한 땅콩 두 줌이 전부였지만 전 늘 감동어린 봉헌 바구니를 받습니다. 이들의 봉헌이 저마다 가진 것에서 일부를 내놓은 것이 아닌, 가난한 과부의 헌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전부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가난과 굶주림은 아마도 눈먼 세상의 부유함과 사치를 보속하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일 것입니다. 마치 부잣집 문간 앞에 눕혀진 종기투성이의 라자로처럼 말이죠. 그리고 저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사제일 뿐입니다.
아프리카 수단 아강그리알에서
한만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