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과 불안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파스카의 신비,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관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믿고 고백하는 교회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한다. 11월은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신자들은 위령성월을 통해 죽은 이들은 물론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게 된다.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자연스럽게 하느님 나라에 대해 묵상하게 되고,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게 됨으로써, 더욱 성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10월 21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벽제중앙추모공원 납골당.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이사장 김운회 주교) 신당종합사회복지관이 진행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웰다잉 프로그램) 현장 체험학습 시간.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경치 좋은 곳에 뿌려줘. 죽어서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구먼.” 납골당에 처음 와봤다는 임재순(아가다·74)씨가 씁쓸하게 웃으며 납골당으로 들어섰다.
임 할머니를 비롯해 납골당을 찾은 어르신 6명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 내 독거 어르신들. 이번 체험학습은 납골당, 화장터 등을 방문해 죽음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묵상을 하고자 마련됐다.
납골당에 들어서자 보이는 건 온통 유골함을 모신 안치단이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안치단에는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물건, 사진, 꽃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납골당을 한 바퀴 돌던 이창구(87)씨가 갑자기 한곳에 멈춰 섰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많이 닮았구먼. 잘해드리지도 못혔어. 그게 늘 후회가 되는구먼.” 이씨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듯 그곳에 서서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납골당을 나온 어르신들이 향한 곳은 화장하는 장소인 벽제 승화원. 납골당에서 불과 3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는 곳이기에 곳곳에서 통곡하는 유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이제는 남의 일 같지 않아. 저 사람은 그래도 행복해 보이는구먼. 내가 죽으면 내 가족도 저렇게 서럽게 울어주려나.”
최장갑(72)씨가 통곡하며 울고 있는 유가족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머지 어르신들의 표정도 이미 굳어 있었다.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듣고 스스로 고민도 많이 해왔지만 막상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자신의 일로만 느껴지는 듯했다.
현장 체험을 마치고 복지관으로 돌아가는 길. 체험으로 인해 어르신들은 많이 심란해보였다.
“난 돈도 없어서 기부같은 것은 하지 못해. 그래도 내가 요리는 좀 할 줄 알거든. 맛있는 요리로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다 죽으면 행복할 거 같어.”
박영옥씨가 먼저 각오를 말했다. 최장갑씨도 “오늘은 참 싱숭생숭한 날이었다”며 “재산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시신기증으로 상대방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임재순씨는 복음말씀으로 대신했다. “복음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지. 오늘은 이 말씀이 정말 내게 와 닿더구먼. 말씀대로만 하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와 성경을 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오 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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