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한 번째 서한에 대하여
지난해 진천 동골에서 리브와 신부에게 편지를 보낸 최양업은 이번에는 제천의 배론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편지를 보낸다.
배론에는 ‘성 요셉 신학교’가 설립돼 6명의 신학생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이때까지 국내에서 신학생 교육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학생 교육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일정한 곳에 신학교가 세워진 것은 배론이 처음인 것이다.
▧ 배론에서, 1855년 10월 8일
최양업은 이 서한에서 자신에게 있어 ‘큰 기쁨’을 이야기한다.
“하느님께서 많은 새로운 형제들을 우리에게 보태주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밭에도 풍년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서 어른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한 숫자만 해도 자그마치 240명이나 됐습니다.”
그러나 ‘분통’ 터지는 일도 있었다. 영세자들 가운데 양반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른 이들보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쉽게 시들어버리는데 대한 것이다. 또 조선의 조정에는 여전히 다툼과 음모 등이 존재했다.
“양반 계급의 사람들은 대개가 한가로운 생활을 합니다. 아무리 먹고 살아갈 것이 없어도 차라리 굶어죽으면 죽었지, 결코 일을 해서 최소한 생계비라도 벌 생각을 안 합니다.(중략) 저들이 입교해 그리스도의 멍에를 짊어지게 되면 하느님의 법에 따라 그 전의 방탕한 생활을 버리도록 강요됩니다. 벌써 먹을 것이 없는 처지이니만큼 굶주림에 못 이겨 못된 버릇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보다도 더 나쁜 사람들이 됩니다.”
최양업은 이어 자신의 부모, 최경환(프란치스코)과 이성례(마리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전 서한에서 부모의 순교행적과 함께 다른 순교자들과 그 밖의 주목할 만한 사건에 대해 자세히 보고하라는 명을 받은 바 있다.
따라서 최양업은 증인들을 찾아 증거를 수집하고 더욱 자세히 조사한 다음, 이 서한에 자신의 부모의 순교행적에 대한 글을 옮긴다. 또 다른 순교자들에 대한 것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후에 보고를 드릴 것도 약속한다.
또 새 교구장에 대한 임명 소식을 듣고 그에 대한 ‘기다림’을 서한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만주교구의 베르뇌 보좌주교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후 최양업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배를 서해안으로 보내 상해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새 주교님께서 오시기만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 주교님을 통해 신부님들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게 될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중략)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 중에 저와 저의 불쌍한 조선 신자들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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