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훈·권철신·권일신의 죽음과 순교문제 재조명(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한국교회 창설 주역들이었던 이승훈·권철신·권일신의 죽음과 순교 문제에 관하여 국내외 사료 연구를 통하여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사계 학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의 견해 내지 주장을 검토하면서 신학적으로 재조명하려고 시도하였다.
1) 논자는, 한국교회 창설 주역들이 신앙을 부인하고 교회를 멀리하였다라고 전하는 당시 관변 기록의 내용이 저들의 진의를 정확히 표현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일부 학자들과 교계 인사들의 관점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설령 그 기록 내용(적어도 일부 내용)이 당사자들의 진의가 담긴 것이 사실이라도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해서 ‘단칼에 무 베듯이’ 그들의 처신을 나약하고 부끄러운 ‘배교’로 규정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3인 모두 당대 사회 안에서 유수한 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천지인(天地人)과 관련된 궁극적 진리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일상 속에서 인륜과 천륜의 도리들을 지키려 진력했던 군자 내지 구도자의 면모를 보여주던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심문 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을 개인적인 나약함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반드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자 하였다.
논자는 이들 3인이 1791년 이래 처하게 된 상황의 심각성에 주목할 것을 언급하였다. 북경에 밀사를 파견하여 한국교회 사정을 보고하고 성직자 파견을 간청하여 낭보를 기대하던 그들에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조상제사 금지 훈령’이 시달된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망연자실해 있었을 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그들이 속해 있고 알고 삶 속에서 실천하던 유가의 진리를 폐기하지 않고 보완하여 완성하는 진리로 여기고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하며,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는데, 그들이 인륜과 천륜으로 정해진 기본 도리로 알고 일상 속에서 지키려 노력해 온 ‘충효’의 가치를 송두리째 폐기시키는 듯한 금령을 시달 받고 깊은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을 강타한 비상 상황 안에서 제기되는 물음들에 대해 어떠한 해명이나 해답도 교회 당국으로부터 들을 수 없는 처지에서 자신들이 이미 숙지하고 있던 유가적 입장에서 심문관들의 질문에 답할 수밖에 없었음을 후손들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논자는, 그들이 평소에 보여준 것으로 알려진 고결한 인품과 치열한 진리 탐구, 그리고 모범적 덕성 함양 노력들을 염두에 둘 때에, 협박과 함께 가해지는 심문관들의 질문을 받고나서 고립무원의 처절한 상태에서 발해진 진술들이 그 당시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들려진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보여준, 익명의 양식으로 드러낸 신앙의 진술로 이해한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다른 신도들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대역부도죄인으로 곧바로 참수형에 처해지거나, 66세의 고령에 장형(杖刑)을 받아 매 맞다가 운명하거나, 50세에 받은 장100도에 해당하는 엄형을 받은 끝에 삶을 마쳐야 했다. 모두 그리스도 신앙 때문에 그들이 겪어야 한 일들이었다. 일부 연구자들이 강조하듯, 이들은 모두 숭고한 순교자들로 인정받아 마땅한 죽음을 맞은 분들이었다.
2) 치열하기 그지없는 구도적 삶을 영위하면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이고 증거했던 교회 선조들의 위대한 삶을 올바로 구명하고 검토하면서 보편 교회 안에서 그분들의 삶에 부합하는 자리를 마련해 드리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는 일은 후손들로서 등한히 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될 과업이라고 믿는다.
한국교회 창설 주역들인 이승훈·권철신·권일신 세분들의 치열했던 구도적 도정을 뒤밟아 따르면서 가혹하기 그지없던 박해의 역경을 겪으면서 지키려했던 신앙 때문에 끝냈던 삶이 미처 이룩하지 못한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는 의미에서 그분들의 고결한 삶과 장렬한 죽음에 부합하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하는 일에 우리 후손 모두 적극 동참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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