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두 번째 서한에 대하여
최양업의 열두 번째 서한은 소리웃에서 작성된다. 서한지인 소리웃에 대해서는 현재 충청도 남부 혹은 전라도 북부나 경상도 지역에 있던 교우촌으로 추정될 뿐이다.
열두 번째 서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페레올 주교 선종 후 최양업이 그토록 기다렸던 베르뇌 장 주교를 영접했다는 사실이다. 베르뇌 주교는 1856년 1월 17일 중국 상해를 떠나 3월 27일 서울에 도착했다.
▧ 소리웃에서, 1856년 9월 13일
최양업은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머리에서 베르뇌 장주교의 영접을 말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뤄진 베르뇌 주교와의 만남을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찍이 큰 서원으로 갈망하였으나, 그 갈망이 실망으로 변해 잊어버린지 벌써 오래된 주교님을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로 마침내 우리 안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르뇌 주교는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를 새로운 선교사로 동반하고 입국했다.
최양업은 열두 번째 편지에도 조선의 선교사정에 대해 낱낱이 고백한다. 그는 사목순방을 별탈 없이 마쳤으며, 180명이 넘는 어른이 샘터에서 몸을 씻고 양무리에 끼어들었다고 말한다.
최양업의 사목에 방해와 어려움도 많았다. 그는 전라도의 진밭들이라는 곳을 예로 들며,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가운데 갑자기 백 명이 넘는 포졸들이 마귀떼같이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왔다고 전한다. 포졸들은 미사 가방과 성작 등을 가져가기 위해 덤볐지만, 신자들의 대항으로 난투극이 벌어졌고 그 틈을 타 최양업은 도망칠 수 있었다.
“관가에 잡혀간 우리 신자들은 용감하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임금님을 비방해도 죄악이 되거늘, 하물며 우주만물을 영원히 지배하는 하늘의 임금님이신 창조주께 욕을 한다는 것은 천상천하에 용납받지 못할 극악대죄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럽 신자들에게 감동이 될 만한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을 보내달라’는 르그레즈와 신부의 부탁에 대해서 최양업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원주에서 참수당한 최해성 요한의 약전도 이 서한에 담는다. 이어 다른 순교자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증거를 수집해 보고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최양업은 이 서한을 마치고 소리웃에서 700리 떨어진 새 교우촌(황해도로 추정)으로 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교우촌은 귀양간 한 신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려 교우촌을 형성한 곳이었다.
“신부님께서는 또 다른 분부로 제게 아쉬운 것이 있으면 청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아쉬워서 청했던 것과 같은 것들을 다시 청합니다. 아쉬운 것 투성이어서 어느 것을 먼저 청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중략) 그러나 다른 것보다 저와 저의 가련한 조선 신자들을 신부님의 사랑이 넘치는 기도에 다시 의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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