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선교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저보다 먼저 가 있던 한국인 선교사와 함께 현지 사람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캄보디아말이 어눌한 저를 일본사람으로, 말 잘하는 그를 현지인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더 오래 있었으니 말도 잘하고 외모도 햇볕에 그을려 현지인과 비슷해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을 배우는 초기였기에 “캄보디아 사람 같다”는 말이 정말 부러웠고 “나는 언제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3년의 생활을 마칠 때 즈음에서야 그와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지인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사실 더 좋았고 어느 정도 그들과 동화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 이주민들을 만나면서, 현지인이 외국인을 현지인처럼 닮았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닮았다”고 좋게 말하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주민들은 아무리 한국말을 잘해도, 한국음식을 잘 먹어도, 외모가 비슷해도 더군다나 한국인으로 귀화를 하였어도 외국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때로는 부끄럽게도 제가 그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외국인으로 대하며 차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육화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육화의 신비를 사는 것인지 말입니다. 아마도 그 초점은 약함과 부서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의 언어, 문화, 생활을 한다는 것에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약함과 부서짐을 취했다는 것에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신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약함과 부서질 수 있다는 점을 선택하여 몸소 사셨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주민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주민으로 와 있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부서지기 쉽고 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도 그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잊고 감추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고 똑같아 질 수도 없습니다만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 진실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약한 존재이며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바로 이 점이 서로에게 육화할 수 있는 통로일 것입니다.
이주민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또 다른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주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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