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쇄신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쇄신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사제다. 무엇보다도 사제의 영성 생활이 가장 먼저 쇄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제들은 왜 본연의 직무인 영성 생활에 충실하지 못할까.
사제 자신도 영성 생활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지만 다양한 신자 층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문제, 한 사제가 많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사목해야 하는 현실, 본당의 대형화와 현대의 사회 구조의 복잡성이 오늘날의 사제 직무 수행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로 인해 사제들은 기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2002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성직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
왜 기도할 시간이 없을까. 구실을 열거하면 한이 없을 것이다. 필자 자신을 성찰해 보건대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도할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도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기도할 마음이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한다. 기도는 하느님과 나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이 만남은 어느 경우, 아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고, 어느 때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이루어진다. 또한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화가 나 어느 날 소리를 지르며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실 기도는 영성 생활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행위이지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성령께서 친히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되새겨 주시면서 주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사랑으로 일치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시간이 없어 기도를 드리기 어렵다는 것은 주님과의 만날 약속을 소홀히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사제는 기도하며 주님과 만날 약속을 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이 없는 사람처럼 아침 점심 저녁 기도 시간에 다른 것을 하면서 주님과의 약속을 잊고 소홀히 하며 살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사제는 자신의 생활과 성실성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사제 직무를 분별하여 영성 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기도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영성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느 날 어느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을 하며 언제나 주님을 몸과 마음으로 의식하며 주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이는 너무 힘겹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조용히 앉아서 성체 조배를 드리고 성서를 묵상하고 성무일도와 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려고 한다면 현실적으로 그런 시간이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제의 활동이 곧 기도라고 자위하면서 활동 위주로만 영성 생활을 한다면 양심의 어느 부분이 석연치 않고 편치 않다. 깊은 침묵 속에 머물며 예수님과 만나 대화를 하고 사랑을 나누지 않은 사제의 활동은 많은 경우 하느님의 뜻과 관계없는 활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가톨릭대 출판부의 「신학과 사상」 44호(2003년 여름)에 실린 김기화 신부의 ‘현대사제의 영성’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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