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는 공간을 이루는 벽 자체에 그려져 주변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오랜 수도원과 성당에는 수많은 벽화가 남겨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국교회에서 벽화는 흔한 편이 아니다. 부통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가 강렬한 색상의 야수파적 작품을 남겼지만 현재는 지워지거나 헐린 작품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교구 부천 상동성당 내 성가대석을 감싸고 있는 벽화는 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제작된 작품은 ‘묵시록’을 대주제로 천장과 사방 각 면이 나름의 의미를 지닌 그림들로 구성돼 있다. 하느님의 나라가 땅을 내려 보고 있는 천장화(‘우주, 하느님의 나라’)와 ‘구원의 역사’, ‘오병이어’(남측), ‘예수의 기적’(서측), ‘성모와 아기예수’(북서측), ‘수태고지’(북측) 등 담담한 색조와 현대적인 기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전한다.
특히 성가대석 동측에 위치한 벽화에는 자연파괴, 마약, 전쟁, 억압, 죽음, 기아, 남북분단 등이 묵시록의 일곱 교회로 표현돼 주님의 구원사업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작품은 또 건물의 구조적 장애물을 최대한 활용했다. 기둥이 나온 부분에는 나무의 기둥을 그려 입체감을 살렸고 창문이 있는 벽면은 그림에 똑같이 창문을 그려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4천 호에 가까운 벽화는 조광호 신부(인천가톨릭대)를 중심으로 김의규(가브리엘)씨 등 3명의 보조자들이 함께 작업했다. 작가는 신구약을 요약해 놓은 묵시록의 내용을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묵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때문에 이 작품 안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점과 희망 등을 모두 찾아 볼 수 있다.
성당에는 이 밖에도 한국의 미와 현대적인 미가 가미된 성물들이 많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이용해 제작된 십자가 고상은 칼과 족쇄를 사용해 만들어졌으며, 스테인드글라스, 제대, 감실 등은 토착화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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