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진암 강학회에서의 천학논증과 신앙수련
천진암 강학회를 통하여 이벽 성조께서는 천학을 천주교로, 천주학을 천주교로, 즉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셨다. 이렇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천주 성신의 비추심을 따라 누구의 권고나 가르침도 없이, 천주의 진리를 스스로 탐구하고 믿으며 실천함으로써, 여기서 한국 천주교 신앙의 움을 틔우고, 한국천주교회의 싹이 돋아나게 하였다.
이제 강학회에 관한, 프랑스 역사가 샤를르 달레의 기록을 보자.
기해(1779년)에 유명한 학자 권철신은 정약전과 학식을 얻기를 원하는 그 밖의 학자들과 함께 방해를 받지 않고 깊은 학문을 연구하기 위하여 외딴 절로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이벽 성조께서는 크게 기뻐하며 자기도 그들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때는 겨울이라 길마다 눈이 덮여 있었고, 절까지는 100여리나 되었다. 그러나 그런 곤란이 그렇게도 열렬한 그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즉시 출발하여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길을 용감하게 걸어갔다. 그의 여행 목적지까지 얼마 안되는 거리를 갔을 때 밤이 되었다. 그는 더 오래 기다릴 수가 없어서 내처 길을 계속하여, 마침내 자정께 어떤 절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과, 자기가 찾아가는 절은 그 산 뒤쪽 산허리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실망은 어떠하였겠는가. 그 산은 높고 눈이 쌓이고 호랑이 굴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벽 성조께서는 중들을 깨워 자기와 동행케 하였다. 그는 맹수의 습격을 막아내기 위하여 쇠꼬챙이가 달린 몽둥이를 짚고서 캄캄한 밤중에 길을 재촉하여 희망하던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이벽 성조와 그 일행의 도착을 산 속에 파묻힌 고적한 그 절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이 아닌 밤중에 이처럼 손님들이 찾아 들었는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구에 모든 것이 밝혀져서 두려움 뒤에 기쁨이 뒤따랐으며, 그 기쁜 상봉으로 빚어진 심정을 털어놓느라고 미처 날이 새는 것도 몰랐었다.
연구회는 10여 일 걸렸다. 그 동안 하늘, 세상, 인성 등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탐구하였다. 예전 학자들의 모든 의견을 끌어내어 한 점 한 점 토의하였다. 그 다음에는 성현들의 윤리 서들을 연구하였다. 끝으로 서양 선교사들이 학문으로 지은 철학, 수학, 종교에 관한 책들을 검토하고, 그 깊은 뜻을 해독하기 위하여 가능한 온 주의를 집중시켰다. 실은 당시 조선의 많은 학자들이 그러한 책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니, 그 까닭은 연례적인 사신행차 때에 조선 선비들이 따라가서 서양의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학서적 중에는 종교의 초보적 개론도 몇 가지 있었다.
중국 서적들의 어둡고 흔히는 모순된 학설에 익숙한 그들은 정직하고 진리를 알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인지라, 천주교 도리에는 아름답고 이치에 맞는 위대한 무엇이 있음을 이내 어렴풋이 느꼈다. 완전한 지식을 얻기에는 설명이 부족하였으나, 그들이 읽은 것만으로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들의 정신을 비추기에 넉넉하였다. 즉시로 그들은 새 종교에 대하여 아는 것은 전부 실천하기 시작하여, 매일 아침저녁으로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7일 중 하루는 하느님 공경에 온전히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읽은 후로는, 매월 7일, 14일, 21일, 28일에는 다른 일은 모두 쉬고 묵상에 전념하였으며, 또 그날에는 육식을 피하였다. 이 모든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극히 비밀리에 실천하였다. 이벽 성조의 마음속에 보배로운 씨앗이 이렇게 떨어지기는 하였으나, 그는 종교에 대한 이 초보적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고 있었으므로, 그의 온 정신은 자기 교양을 보완하는데 필요한 더 많고 더 상세한 서적이 있을 북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책들을 장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여러 해 동안 갖가지 방법을 시도하여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천주교 교리를 깊이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초대 천주교인들이 쓴 이야기를 보면, 그의 누이의 1주기를 기회로 마재 정씨 집에서 얼마 동안 머무른 다음, 1783년 초여름 4월 15일에 이벽 성조께서는 정약전, 정약용 형제와 함께 배를 타고 서울로 향하였다. 길을 가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의 주제는 역시 그들이 늘 하고 있는 철학연구였다. 하느님의 존재와 유일성, 천지창조, 영혼의 신령성과 불멸성, 후세의 상선벌악 들 문제를 차례차례로 검토하고 해석하였다. 승객들은 그렇게 아름답고 위로되는 진리를 처음 듣고 놀라서 황홀해졌다.
※ 자료출처 : 천진암성지 홈페이지(chonjina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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